[초점] 일본에 남겨진 조선 국적자들, 역사에 갇힌 삶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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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일본에 남겨진 조선 국적자들, 역사에 갇힌 삶의 초상

포인트경제 2025-07-18 09:25:57 신고

3줄요약

‘조선’ 국적, 국가는 없고 기록만 남았다
여권도 보호도 없는 삶… 사실상 무국적자의 현실
일본 안에서는 특별영주자, 국제사회에서는 경계인
정체성 지키려는 선택, 그러나 점점 줄어드는 조선 국적자

[포인트경제] 지난해 말 기준, 일본에는 여전히 약 2만 명의 ‘조선’ 국적자가 존재한다. 국적 표기상으로는 ‘조선’이지만, 이는 한국도 북한도 아닌 이름이다. 대한민국 국적도 선택하지 않았고, 일본 국적도 취득하지 않은 채 일본에서 수십 년을 살아가는 이들은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사실상 무국적자’로 여겨지곤 한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의 자손들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조국은 사라졌지만, 일본에 남은 이들에게는 명확한 국적 선택지가 없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와 함께 일본 정부는 조선인의 일본 국적을 박탈했고, ‘외국인 등록’ 제도가 시행됐다. 이때 ‘조선’이라는 명칭이 국적란에 기재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일본 도심의 골목 한켠(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음) ⓒ포인트경제 박진우 도쿄 특파원 시간이 멈춘 듯한 일본 도심의 골목 한켠(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음) ⓒ포인트경제 박진우 도쿄 특파원

‘조선’은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국가명이 아니다.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행정상으로는 국가가 없는 국적, 다시 말해 실체가 없는 지리적 표기일 뿐이다. 이 때문에 조선 국적자는 외교적 보호도, 여권도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일본 정부가 발급하는 ‘특별영주자증명서(特別永住者証明書)’가 존재한다.

‘특별영주자’는 일본 정부가 1991년에 제정한 특별법(출입국관리특례법)에 따라,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거주했던 조선·대만 출신자와 그 후손에게 부여한 체류 자격이다. 오늘날 이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 또는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코리안으로, 대만계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적과는 관계없이 일본 내에서의 거주와 사회활동을 보장하는 법적 지위로, 조선 국적자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이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증명서를 통해 일본 내에서 취업, 의료, 금융, 교육 등의 기본 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국경 밖에서 시작된다. 조선 국적자는 여권이 없고, 외국에 나갈 때는 일본 당국이 발급하는 ‘재입국허가서’나 ‘여행증명서’에 의존해야 한다. 북한 국적자도 아니기 때문에 북한 정부로부터 여권이나 보호를 받지 못하며, 한국 국적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영사 보호 대상도 아니다. 즉, ‘특별영주자’라는 체류 자격은 일본 안에서는 법적으로 보장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무국적자에 가까운 지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 국적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사실상 무국적자처럼 여겨진다.

▲ 첫째, 여권이 없다. 여행은 물론 비자 신청도 어렵다.▲ 둘째, 북한 정부로부터도 국적자로 인정받지 못해 외교적 지원이 없다.▲ 셋째,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이상, 한국 정부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 모든 조건은 결국 “어느 국가도 이들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물론 많은 재일조선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국적으로 변경하거나 일본에 귀화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 국적을 고수하는 이들도 있다. 조총련계 학교를 졸업했거나, 정체성의 뿌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때로는 정치적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대가 지나며 점차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특별영주자 중 일부는 대한민국이나 북한 중 하나의 국적을 택하기보다는, 분단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일본 사회의 차별과 동화 압력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조선'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 국적자의 존재는 일본 사회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적 과제를 드러낸다. 일제 식민지, 분단, 외교 부재가 만들어낸 이 지위는 단지 행정적 문제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존엄, 권리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국적은 이름이 아니라, 누가 나를 책임지는가의 문제라는 점에서, 조선 국적자들의 삶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계 위의 삶’으로 남아 있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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