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의대생에 이어 전공의 복귀세도 뚜렷해지고 있다. 정책 기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복귀세가 확산되는 것은 이례적인 흐름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일각에선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공공의대 신설에 대한 반대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정 후보자 개인에 대한 신뢰가 전공의 사회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전국 전공의 1만3531명 중 1만1732명이 사직(임용 포기)해 사직률은 86.7%에 달했다. 이는 2020년 의사 파업 당시 전공의 집단행동 참여율(최대 50~60% 수준)보다 높은 수치다. 의료계는 이번 대규모 사직이 단순한 정책 반대가 아니라 필수의료 인력 부족, 저수가, 의료사고 형사책임 부담 등 누적된 법적·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 형성되고 있는 정 후보자의 신뢰 자산은 코로나19 방역 당시 형성됐다. 그는 매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정보를 공개하고 의사협회·병원협회와 현장 협의를 진행, 일부 방역지침은 의료계에 따라 조정했다. 2021년 초 중환자 병상 배정 기준 완화, 필수의료 전담 인력 배치 지침 수정 등도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전공의 사회에서는 이 같은 합의형 의사결정 방식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정 후보자가 수련환경 개선 논의를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에서 “의료계와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수련협의체 구성과 특례 검토 의사를 밝혔다. 과거 의정 갈등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 같은 대응이 복귀세 확산의 심리적 장벽을 낮춘 요인으로 판단된다.
복지부도 대응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제출한 수련환경 개선안이 정식 검토 안건으로 채택, 지난 3일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가 바뀌며 의료계 불신이 완화되고 있다”며 “전공의·의대생이 2학기 복귀할 환경을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기대감이 커졌다. 전공의들은 이를 정부가 필수의료와 수련환경 개선 책임 의지를 공식화한 신호로 해석하며 복귀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도 하반기 모집을 통해 복귀 전공의를 대상으로 입영 연기와 전문의 시험 추가 시행 등을 검토 중이다. 17일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담당 실국에서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복귀세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그 배경과 한계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설문에 따르면 중증·핵심 필수과 전공의의 80% 이상이 의료사고 소송 부담을 복귀 기피의 주요 이유로 꼽았다. 고위험 필수의료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합병증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중대한 과실 입증 전에도 구속 수사가 이뤄지며, 고액 손해배상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현실이 걸림돌로 지적된다.
때문에 전공의들은 근무시간 준수, 필수의료 지원 확대와 함께 의료사고 형사처벌 기준 완화, 불구속 수사 원칙 명문화, 국가배상 책임제 도입 등을 핵심 요구로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요구는 지난 6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담회에서 복지부와 법무부의 공식 검토 안건으로 지목됐다. 이후 전공의들은 복귀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실제 의사를 밝힌 상당수는 “법적 부담 완화 약속이 결정의 실질적 계기가 됐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복귀세 확산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근무환경 개선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전공의 사회의 근본 입장 변화는 제한적이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에 대한 반대 기조도 유지되고 있으며 정부는 특례 조치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적 리스크 완화와 저수가 개선 등 구조적 과제는 입법과 예산이 수반돼 단기간 해결이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책 수정의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정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되더라도 관료조직의 정책 관성을 제어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제기된다. 이에 제도 변화보다는 ‘인물 신뢰’라는 일시적 요인에 기대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복귀세를 단순한 일시적 흐름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필수의료 지원과 수련환경 개선을 둘러싼 제도 논의가 공식화되고, 대통령이 직접 필수의료 책임을 언급하는 등 정책 환경 변화가 전공의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정 후보자에 대한 신뢰가 복귀 논의의 심리적 장벽을 낮춘 것은 사실이나, 정책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하며 현실적 동인이 됐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판단은 과거 사례와 비교할 때 더 분명해진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공의 사직률은 전국 평균 40% 수준에 그쳤고, 복귀세 역시 정부·의료계 합의 이후 갈등 봉합에 초점이 맞춰졌다. 필수의료 지원이나 수련환경 개선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이번 복귀가 과거와 다른 양상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복귀세가 연내 가시적 개선책으로 이어질지는 이번 흐름의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공식 협의체 출범과 개선책이 제시된다면 필수의료 안정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때 “소통은 가능하지만 정책 변화는 없다”는 회의론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전망이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전공의는 “정 후보자 개인에 대한 신뢰가 갈등 완화의 촉매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며 “방역 시절 보여준 합의형 리더십이 전공의 심리적 장벽을 낮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근무시간 준수나 법적 리스크 완화 같은 핵심 요구는 제도와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 기대가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 여부가 이번 복귀의 지속성을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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