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캐나다가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철강에 대한 관세율 쿼터를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조치로 인해 중국산 저가 철강이 세계 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캐나다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으로 향후 글로벌 철강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16일(현지시간) 온타리오주 해밀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되는 철강 제품에 대해 전년도 수입 물량의 50%까지만 무관세 혜택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50%의 고율 관세가 즉시 적용된다.
이번 조치는 미국, 멕시코를 제외한 국가들에 적용된다. 미국과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체결국으로 기존의 무역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FTA 체결국인 한국, 유럽연합(EU), 호주 등은 전년도 수입량 수준까지는 무관세 쿼터가 유지되지만 이를 초과할 경우 마찬가지로 50%의 관세를 물게 된다.
이번 캐나다 정부의 조치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지난 3월,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최근에는 관세율을 50%로 인상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미국 내 입지가 좁아진 중국 철강이 제3국 시장으로 방향을 틀 것으로 예상되며 캐나다도 그 주요 대상국 중 하나로 꼽혔다.
철강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중국산 저가 제품의 무차별적인 유입을 막기 위한 '사전 방어막'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카니 총리는 "우리는 단순한 무역 의존에서 벗어나 회복력 있는 산업 구조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며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속에서 캐나다 산업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조치는 단순한 산업 보호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보호무역주의 흐름에 또 다른 불씨를 던졌다. 미국, EU 등 주요 경제권역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각종 수입 규제를 도입하면서 글로벌 철강 수급 불균형과 무역 마찰이 가시화되고 있다.
EU 역시 미국발 고율 관세에 대응해 보복관세를 검토 중이며 캐나다는 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의 보복 관세를 이미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이 반복될 경우, 세계 철강 시장은 '관세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2014년 캐나다와 FTA를 체결한 국가로 이번 조치에서 비체결국보다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관세를 피하려면 전년도 수출 물량 범위 내에서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수출 물량이 이를 초과할 경우 한국산 철강도 50% 관세를 피할 수 없다.
한국 철강업계는 아직까지는 "미국의 쿼터 면제가 유지되고 있어 피해는 제한적"이라는 입장이지만 쿼터 상한선이 폐지되거나 물량이 줄어들 경우 약 6조원 규모의 대미 수출 시장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는 캐나다와의 FTA 조항을 재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쿼터 확대나 면제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과거 한국은 미국과 쿼터 면제를 합의한 전례가 있는 만큼 유사한 외교적 노력이 요구된다.
캐나다의 이번 발표는 단순한 철강 수입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철강 산업의 무역 질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의 철강 관세 폭탄으로 시작된 파장이 이제 캐나다와 EU, 아시아 주요국까지 번지고 있으며 이는 자국 산업 보호라는 이름 아래 무역 협정과 국제 규범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한국은 당장 큰 타격은 피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쿼터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캐나다와의 외교 협상을 통해 안정적인 수출 물량을 확보하는 한편 다른 신흥 시장 다변화 전략도 병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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