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단순 선악 구도 벗어난 '의외의 반전'…영화 '소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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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단순 선악 구도 벗어난 '의외의 반전'…영화 '소주전쟁'

비즈니스플러스 2025-07-17 09:31: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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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주전쟁' 포스터 /사진=연합뉴스
영화 '소주전쟁' 포스터 /사진=연합뉴스

영화 '소주전쟁'을 보기 전까지 "'외국 자본에 침탈당하는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라는 교과서적 뻔한 얘기겠지~"라는 지레짐작을 했는데, 영화를 본 뒤 이런 편견이 산산히 부서졌다.

"정말 시나리오를 잘 쓴 영화"라는 감상이 가장 먼저 나왔다. 

이 영화는 국내 대표 소주 브랜드인 진로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외국계 투자사인 골드만삭스에 넘어갔다가 2005년 하이트맥주(현 하이트진로)에 국내 M&A 사상 최고가인 3조4100억원에 매각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엄밀히 말하면 조선 토종 자본이 일제강점기 식민 자본을 거쳐 한국 자본으로 넘어온 곳에 먹혔다고 볼 수 있다.

진로의 모태 기업인 진천양조상회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장학엽 창업자가 설립했으며 진로 소주를 처음 출시했다. 장학엽 씨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어 교사로 활동하다 해직당할 정도로 민족교육을 위해 힘쓴 인물이다. 진로 소주의 창업도 독립운동과 민족교육 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에 하이트와 테라를 만드는 하이트맥주의 모태는 1933년 대일본맥주(지금의 아사히·삿포로맥주의 전신)가 한반도에 세운 조선맥주다. 조선맥주는 해방 후 미군정의 관리 하에서 민영익의 손자인 민덕기 씨가 관리 지배인으로 추대되면서 '크라운맥주'로 상표를 바꿨다. 민덕기 씨는 자신의 사재를 투입해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맥주공장을 복구하는 등 회사 재건에 큰 역할을 했다.

이어 1966년에 현 박씨 일가로 경영권이 넘어온다. 1967년에 박경복(현 명예회장) 씨가 조선맥주의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현재 박문덕 회장에 이르기까지 국내 오너 체제로 본격 전환했다. 여담이지만 2002~2003년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종로회관에서 삿포로맥주를 즐겨 마시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드라마적 상상이라고 한다.

큰 얼개 면에서는 영화 속 국보소주가 진로이고 외국계 투자사인 솔퀸이 골드만삭스라고 볼 수 있다.  

시나리오상 인물들 하나하나 모두 입체감 있는 캐릭터로 묘사됐다. 외국계 사모펀드는 무조건 '악'이고 국내 기업 경영진은 '선'이라는 단순한 선악구조도 빗겨간다.

국보소주의 석진우 회장(손현주)은 경영권 사수를 위해 위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고 회사에 충성하는 표종록 이사(유해진)를 수시로 인격모독한다. 외국계 투자사 솔퀸의 애널리스트 출신 최인범(이제훈)은 돈만을 위해 비인간적으로 일하는 것 같으면서도 표 이사를 만나며 인정에 흔들리고 고뇌하는 인물이다.

표 이사는 오매불망 회사에만 충성하며 직원들이 구조조정 당할까봐 걱정하는 등 이 영화에서 가장 단순한 캐릭터로 그려지는 듯하다가, 영화 후반부 강렬한 반전을 뿜어낸다. 그 외 인물들도 각자의 욕망에 따라 선악을 오가며 파렴치한 인물처럼 보이다가도 인정을 보이고, 또 그 반대인 다면적인 캐릭터들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장면은 석 회장과 최영준 변호사가 연신 위스키를 들이키는 장면이다. 국보소주의 신제품 '탑' 소주를 마시는 인물은 표 이사와 최인범뿐이다.

'탑' 소주가 국보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할 정도로 온국민 애정템이지만, 정작 그룹 회장과 그룹을 변호하는 로펌 직원들은 '탑' 소주를 일반 서민들이나 마시는 술로 치부하고, 본인들은 값비싼 위스키만 마신다는 풍자를 은연 중에 드러낸다.

이러한 태도는 석 회장이 국보소주를 발판으로 건설업 등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하다가 부도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는 발단이 된다. '소주업'에 대한 장인 정신을 외면하고 재벌 대기업으로 무작정 몸집을 불리고자 한 탐욕이 결국 그를 감옥으로 이끌었다.

'탑' 소주의 상호명 '탑'(Top)도 상징적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인생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분투하며 치열한 수싸움을 하고 때로 상대방의 뒤통수도 친다. 이렇게 저렇게 큰 틀의 전략을 세우고 잔꾀를 부리면서 석 회장처럼 탑까지 올라갔다가 추락하는 인물도 있고, 투자사·로펌 직원들처럼 바닥에서 탑으로 치솟는 인물들도 생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진부했던 장면은 표 이사가 술에 취해 최인범에게 전화를 걸어 "국보소주를 넘겨받더라도 직원들 구조조정은 하지 말아달라.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들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으면 애들 학비와 은행 이자는 어떻게 할 거냐"며 애끓는 표정을 짓는 부분이다.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탈취한 뒤 대규모 구조조정을 벌이는 사례는 최근 한국 경제에서 무수히 되풀이되고 있다. 그때마다 외국계 자본을 '악'이라고 규정하고 노조 시위를 하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식으로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이 산업의 글로벌 스탠다드 자체를 바꿔버리고 선진 기술이라는 미명 하에 AI가 사람을 손쉽게 대체해버리는 현실에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경영해 나가야 하나라는 질문에 이 영화의 다면적 구성은 좋은 답이 될 수 있다. 

이 영화의 입체적인 인물 캐릭터도 향후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준다.

과잉충성의 대표주자였던 표 이사는 비인간적 자본주의의 대명사 최인범을 만나 가정까지 외면하고 때로는 불법적이기까지 한 회사 일에 과몰입했던 자신의 삶을 반성했고, 최인범 역시 표 이사를 통해 회사에서 돈만 추구하지 않고 직장과 직장동료를 애정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웠다.

처음엔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했지만 차츰 서로의 다른 점을 차이로 인식하면서 자신이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여기에 문학적 장치를 적절하게 사용한 것은 시나리오의 백미다.

얼핏 보면 여러 명의 작가가 집단 창작하는 미국 드라마를 볼 때처럼, 기승전결의 완성도가 있고 탄탄한 인물 캐릭터 구축이나 소재의 상징적 활용이 절묘하다. 

안타깝게도 이 훌륭한 시나리오 때문에 제작사와 감독 간 소송이 걸려있다고 한다. 영화가 애초 기대보다 더 흥행하지 않은 이유를 소송 탓으로 돌리는 여론도 있다. 최윤진 감독이 스태프의 시나리오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것이 소송의 주 내용인데, 그래서 영화 크레딧에도 '감독'으로 명기되지 못하고 '현장 연출'로 변경됐다고 한다. 

뒷얘기는 무성하지만 일단 영화를 보고 "반전도 없고, 줄거리만 봐도 예상이 되는 뻔한 영화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보기좋게 깨졌다.

흥행 성적도 나쁘지 않다. 개봉 관객 수도 27만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 150억원에 무난히 도달할 전망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자본주의 시대에 하루하루 노동하며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직장인들이라면 꼭 봐야할 영화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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