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기업들에게 '차이나 리스크'가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시장이지만, 과도한 의존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4억 인구를 보유한 인도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앞다퉈 인도 진출에 나서고 있지만, 막상 현지에서는 중국 브랜드와 토종 기업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장밋빛 전망과 달리 현실은 만만치 않다.
인도가 한국 기업들에게 진정한 기회의 땅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시행착오로 끝날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단순한 시장 확장을 넘어 현지화와 차별화된 전략 없이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뉴스락>뉴스락>은 인도 시장에서 벌어지는 한국 기업들의 도전과 현실을 분석한다.
미중갈등 속 K-기업 생존전략, 인도行 러시 가속화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와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호 정책 강화로 한국 주요 대기업들이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인도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는 전략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디리스킹' 전략 차원에서 생산 및 공급망 다변화가 본격화되면서, 14억 인구를 보유한 인도가 '제2의 중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들의 중국 시장 고전이 수치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3년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지만, 현재는 상위 4위 안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리서치포인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1위 비보, 2위 화웨이, 3위 샤오미, 4위 애플 순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2025년 1분기 중국 시장에서 각각 2만9000대, 1만8000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8%, 9.9% 감소했다. 현대차그룹의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은 2016년 6.1%에서 올해 1.6%로 급락했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9월 중국 광저우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을 현지 기업에 약 2조원에 매각했다. 중국 기업이 저가 공세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삼성디스플레이에 이어 LG디스플레이까지 공장을 매각하면서 한국은 중국 내 TV용 LCD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조사 결과, 한국의 제조업 분야 해외투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12년 40.9%였으나, 2013~17년 33.7%, 2018~23년 26.7%로 점차 감소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 기업들의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시장이지만, 생산거점 다변화를 통해 중국 리스크를 낮추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한국 기업들은 인도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은행이 발간한 2025년 1월 세계 경제 전망(GEP) 보고서는 인도 경제성장률이 FY2025/26년과 FY2026/27년에 각각 6.7%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경제성장률 평균인 2.7%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인도의 가장 큰 매력은 젊은 인구구조다. 25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50%를 차지하는 젊은 국가로,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등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산층 규모도 2억 명을 넘어서며 구매력 있는 소비자층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KOTRA 분석에 따르면 인도는 2023년 자동차 생산량 세계 4위(585만 대), 스마트폰 출하량 1.46억 대로 중국에 이은 세계 2대 스마트폰 시장으로 등극했다.
매년 엔지니어 150만 명, MBA 졸업생 30만 명을 배출하며 117개 유니콘 스타트업을 보유한 국가로 우수한 이공계 노동력과 혁신 기업 성장이 전망된다.
디지털화를 통한 14억 시장 통합도 인도의 핵심 경쟁력이다. 디지털 신분증, 디지털 결제 시스템 도입, 간접세(GST) 통합으로 14억 인도시장이 상당 부분 통합됐다.
2024년 9월 기준 약 550개 은행과 연결된 인도 UPI(통합 결제 인터페이스) 도입을 통해 14억 디지털 결제 인프라가 통합됐다.
인도의 디지털 경제는 2025년 말까지 1조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 보급률도 2025년 약 75%로 전망되며, 농촌지역의 통신망 접근도 확대되고 있다.
인도는 미중 갈등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2020년 5월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 유혈사태 발생 이후 중국산 앱 규제, 투자 사전승인제도 도입 등 대중국 의존도 감소를 위한 노력을 전개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탈중국화 움직임에서 수혜를 받고 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미국이나 중국 일변도의 수출에서 벗어나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 경제계가 글로벌 원팀으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경성 KOTRA 사장은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역은 성장 잠재력이 크고 우리 수출 확대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2의 중국 놓치지 않는다"...K-기업, 각양각색 인도 공략법
세계 최대 인구 대국 인도를 둘러싼 한국 주요 대기업들의 시장 선점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단순한 수출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현지 생산, 프리미엄 포지셔닝, 글로벌 거점 활용 등 기업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구사하며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는 인도를 단순한 판매 시장이 아닌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에 구축한 모바일 생산공장은 연간 1억200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 세계 최대 규모다.
이를 통해 인도 내수 공급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 등 제3국 수출까지 담당하고 있다.
1995년 대기업 최초로 인도 시장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30년간 꾸준한 투자를 이어가며 현지 가전·스마트폰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현지화 전략도 눈에 띈다. 갤럭시 M 시리즈처럼 인도 시장 맞춤형 제품을 개발해 가성비를 중시하는 현지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 커드(수제 요거트) 제조 기능을 강화한 냉장고, 힌디어 UI를 적용한 AI 세탁기 등 인도 특유의 생활 패턴을 반영한 제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 구르가온에서 '비스포크 AI 가전'의 혁신 기술을 소개하는 서남아 테크 세미나를 개최하며 AI 홈 시나리오를 선보였다. 벵갈루루와 노이다에 R&D 센터를 운영하며 현지 IT 인재들을 대거 채용하는 인재 현지화에도 적극적이다.
LG전자는 인도 가전시장에서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통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1997년 현지 법인 설립 이후 약 30년간 입지를 다져온 결과, 현재 인도 가전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레드시어리포트에 따르면 LG전자의 인도 시장 점유율은 냉장고 28.7%, 세탁기 33.5%, TV 25.8%, 에어컨 19.4%로 모든 주요 가전 분야에서 1위를 기록했다.
현지 소비자 취향에 맞춘 제품 개발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초음파로 모기를 쫓는 에어컨, 인도 전통의상 '사리'를 고려한 세탁기 등이 대표적이다.
LG전자는 2025년 5월 인도에 세 번째 가전공장 착공에 나섰다.
안드라프라데시주 스리시티에 6억 달러(약 8400억원)를 투자해 건설하는 이 공장은 부지 100만㎡, 연면적 22만㎡ 규모로 LG전자의 인도 공장 중 가장 크다. 새 공장이 완공되면 LG전자의 인도 내 총생산 능력은 해외 거점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큰 규모가 된다.
현대차는 인도를 글로벌 수출 거점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내수 시장에서도 성장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1996년 가동을 시작한 첸나이 공장은 현재 연간 82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생산량의 약 50%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첸나이 공장은 1999년 첫 선적 이후 25년 만에 누적 370만대 수출을 달성했다. 수출 대상 국가는 150여 개국에 달하며, 크레타, i20, 그랜드 i10 등이 주력 수출 모델이다.
인도 내수 시장에서는 2위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2024년 현대자동차 60만5433대, 기아 25만5038대로 2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차는 2025년 4분기부터 제너럴모터스(GM)로부터 인수한 탈레가온 공장에서 완성차 조립·생산을 개시해 연간 100만대 생산 체제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기아는 인도 최고 공과대학들과 손잡고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핵심 기술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IIT(인도 공과대학교) 3개 대학과 함께 '현대 미래 모빌리티 혁신센터' 공동 설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기아는 현대 혁신센터에 2년간 약 50억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배터리·전동화 분야를 포함한 미래 모빌리티 기술에 대한 공동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AI 기반 배터리 상태 진단 기술 개발, 인도 3륜 전기차용 배터리팩 설계 등 인도 현지 환경과 인프라 특성에 기반한 과제들이 포함됐다.
기아는 별도로 IIT 티루파티와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5년간 58억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교육 인프라 설립 지원, 인턴십 프로그램 운영, 자동차산업 특화전공 개설 등 다양한 산학협력을 추진한다.
HD현대는 인도의 인프라 건설 붐에 맞춰 조선·중공업 분야에서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의 인도 공장 가동률이 109.6%에 달하며 전사업장 평균(46.2%)을 크게 웃돌고 있다.
2007년 인도 진출 후 2024년 건설기계 시장 점유율 17%로 2위를 기록했다. 1위인 일본 히타치(약 20%)와는 3%포인트 차이에 불과하다. 회사는 2030년 점유율 30%로 1위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선 분야에서는 HD한국조선해양이 인도 최대 국영 조선소인 코친조선소(CSL)와 '조선 분야 장기 협력을 위한 포괄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국내 조선업계와 인도 업체와의 협력이 성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포스코는 인도 1위 철강 회사인 JSW그룹과 연산 500만 톤 규모의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인도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양사는 50대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오디샤 주에 제철소를 공동 설립하기로 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뒷받침되고 있다. 인도 정부는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통해 제조업 육성에 집중하며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인도 진출 K-기업들, 경쟁 심화 속 리스크 관리가 관건
각양각색 전략으로 인도 시장 공략에 나선 한국 기업들이 예상보다 거센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주력 기업들이 중국 브랜드와 현지 강자들의 도전에 밀리면서, 진출 전략의 근본적 재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2025년 1분기 기준 삼성전자는 17% 점유율로 2위를 차지했지만, 중국 브랜드 비보(22%)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중국 브랜드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비보를 비롯해 오포(15%), 샤오미(13%), 리얼미(11%) 등 중국 4개 브랜드가 전체 시장의 61%를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비보는 3분기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브랜드들의 공격적인 가격 정책과 현지 맞춤형 마케팅이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현대차의 고전이 이어지고 있다. 2025년 회계연도 기준 현대차 점유율은 14% 수준으로 하락했으며, 최근 3개월 연속 4위로 밀려나면서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마루티 스즈키가 40% 이상의 압도적 점유율을 유지하는 가운데, 현지 브랜드 마힌드라와 타타모터스가 각각 2위와 3위로 부상하며 현대차를 추월했다. SUV 중심의 시장 변화에 따라 현지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인도 진출에는 여러 리스크가 산재해 있다. 정치적 리스크가 가장 크다. 2020년 인도-중국 국경 충돌 이후 중국 앱 규제가 강화되면서 한국 기업들도 간접적 영향을 받았다.
경제적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인도 루피 환율 변동성과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비 증가로 비용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경쟁 심화와 인프라 부족 문제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의 인도 진출 방식에 대한 근본적 재고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포스코경영연구원 관계자는 "단독투자나 한국 기업 간 공동투자에 국한하지 않고, 현지 유수 기업이나 글로벌 기업과의 합작투자 방식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도 기업 중에서도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한 기업이 많아졌고, 세계 공급망(GVC) 재편에 부응하는 대규모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자원역량을 보완하고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는 합작 사업 추진이 바람직하다는 분석이다.
신설(그린필드) 투자만이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M&A) 및 M&A 후 증설(브라운필드) 투자의 유효성도 주목받고 있다. 인도 정부가 패스트 트랙 합병 제도를 확대하고 기업 합병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M&A 투자 환경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인도 기업들도 대부분 M&A 방식을 통해 기업 성장을 도모하고 있어 이러한 접근법이 현지에서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2030년까지 국유 자산의 민영화를 추진할 계획이므로, 철강 등 중화학 공업 분야에서 민영화 참여 준비도 필요해 보인다는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인도 진출 기업들을 위한 종합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양국 간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도 강화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인도 시장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시장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거대한 기회의 시장"이라면서도 "현지화 전략과 차별화된 기술력 확보가 성공의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Copyright ⓒ 뉴스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