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LG전자가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 개발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반도체 후공정의 핵심 장비 중 하나인 하이브리드 본더(Hybrid Bonder) 시장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이 이미 초기 시장을 선점한 가운데 LG전자는 정밀도와 공정 신뢰성을 앞세워 HBM 공정 대응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시장조사업체 베리파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시장 규모는 2023년 52억6000만달러에서 2033년 140억2000만달러(약 19조34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최근 엔비디아, AMD 등 주요 AI 반도체 기업이 HBM(고대역폭메모리) 채택을 확대하면서 고정밀 본딩 장비 수요도 늘고 있다.
특히 2025년 이후 TSMC와 인텔이 HBM 후공정 패키징 물량을 단계적으로 늘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메모리 업체뿐 아니라 파운드리·후공정 전문 업체(OSAT)까지 하이브리드 본더 수요가 확산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이브리드 본더는 기존 열압착(TC) 본더와 달리 범프를 사용하지 않고 웨이퍼와 칩을 직접 접합하는 장비다. TC 본더는 공정 단순성과 양산 경험이 강점이지만, 칩 적층 수가 많아질수록 정렬 오차와 접합 신뢰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HBM6부터는 적층 수가 16단 이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고, 데이터 전송 속도도 8TB/s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정렬 오차 허용 범위가 100나노미터 이하로 좁아져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며 HBM7에서는 50나노미터 이하 정밀도가 요구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기존 TC 본더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정밀 계측·보정 능력이 하이브리드 본더 경쟁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LG전자가 본딩 장비 개발에 나선 것은 이 같은 변화를 HBM6 전환기의 틈새시장으로 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부품 회사 관계자는 “TC 본더 시장은 한미반도체가 이미 글로벌 점유율 90%를 차지해 후발주자가 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다”며 “반면 하이브리드 본더는 정밀 계측과 알고리즘 보정이 핵심 경쟁력이어서 기존 TC 본더 강자도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메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내부 역량 강화를 위해 조직과 인력도 확대하고 있다. LG전자 생산기술연구소(PRI)는 기존 반도체 패키징 기술 연구조직을 확대하고 관련 고급 인력을 신규 영입하는 한편, 학계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인하대 하이브리드 본더 연구진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행보를 LG가 하이브리드 본더를 단순 신규 사업이 아닌 중장기 B2B 전략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LG의 계측·보정 역량은 이미 디스플레이와 카메라 모듈 분야에서 상용화된 바 있다. LG디스플레이는 OLED 생산 과정에서 수십 나노미터 수준의 미스얼라인먼트(정렬 오차) 보정 기술을 적용했고, LG이노텍은 초소형 카메라 모듈 자동화 조립 설비에서 나노 단위 계측과 고신뢰성 공정을 구축해 왔다. 시장에서는 이런 계측·보정 경험이 하이브리드 본더의 정밀도 요구 조건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초기 시장에서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의 행보도 LG전자의 전략 판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미반도체는 TC 본더 점유율 1위를 기반으로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을 병행하고 있으나, 개발 후반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화세미텍 역시 기술 검증을 진행 중이지만 현재 사업 중심은 HBM4·HBM5 대응용 TC 본더에 있다.
일각에서는 LG가 50나노미터 이하 정밀도 구현에서 강점을 보인다면 HBM6 이후 초기 물량에서 일부 점유율을 확보할 여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기존 강자들도 장비 속도 개선과 센서 고도화를 통해 기술 격차를 좁히려 하고 있어 시장 주도권이 고착되지는 않았다는 관측도 병존한다.
시장 환경도 기회로 작용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6 전환 이후 수율 확보와 생산 리스크 분산을 위해 멀티벤더 전략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HBM 공정은 한 번 수율이 흔들리면 전체 생산량이 지연된다”며 “멀티벤더 전략은 리스크 분산뿐 아니라 수율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가 하이브리드 본더 상용화에 성공하면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삼성전자 등 주요 메모리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후발주자로서 리스크도 존재한다.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는 설계부터 공정 검증까지 2~3년이 소요되고, 고객사 인증에도 최소 6개월 이상이 필요하다. HBM6 초기 양산이 예상되는 2027년까지 기술 완성도를 확보하지 못하면 초기 물량은 이미 검증된 레퍼런스를 보유한 업체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LG전자가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잡은 것도 이 같은 시장 상황을 고려한 보수적 일정이라는 평가다.
향후 시장 전망은 LG전자의 기술 완성도에 달려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센서 개수나 장비 속도보다 어떤 데이터를 어떤 기준으로 조합해 정렬 오차를 줄이느냐가 관건”이라며 “HBM6 이후 세대가 본격 양산되는 2028년이 본딩 장비 경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계측·보정 기반의 정밀도 우위를 입증할 때 HBM6 후속세대에서 후발주자로서의 한계를 일부 극복할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전자 관계자는 “당사 생산기술연구소(PRI)가 반도체용 패키징·검증 장비를 제작·판매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HBM용 하이브리드 본더 기술도 꾸준히 개발해 왔다”며 “현재는 고객사 수요와 시장성을 검토하는 단계로 B2B 특성상 고객사 확정 이후 공급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