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백연식 기자] 한미 관세 협상과 맞물려 정밀지도 해외 반출 문제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제시할 수 있는 당근책 중 하나로 국내 정밀지도를 구글이나 애플 같은 미국 업체에 제공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부는 지난 두 차례 모두 안보 우려를 이유로 불허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의 관세 압박이 거세지면서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에서는 정보주권 침해 가능성이 크고 국가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15일 IT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관련법에 따라 유관 기관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오는 8월 11일까지 반출 허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일찌감치 한국에 대한 비관세 장벽의 하나로 정밀지도 반출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목했다.
지난 2월 구글은 5000대 1 축척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허가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신청했다. 이는 50m 거리를 지도상 1㎝로 표현해 골목길까지 세세하게 식별할 수 있는 지도 데이터다.
또한 지난 2016년 구글이 두 번째로 고정밀 지도 반출을 신청하자 정부는 △국내 서버 설치 △민감 시설 흐림·위장 처리 등 국내 사업자와 동일한 조건을 제시했으며, 결국 반출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업계에서는 국내 서버 구축 비용 대비 효율성, 향후 유사 문제시 서버 증설 가능성을 고려해 구글이 수용하지 않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2023년 애플도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청했으나 불허됐다.
올해 두 기업이 다시 신청을 한 상태다. 구글이 지난 2월 18일, 애플이 6월 16일 각각 국외 반출을 공식 신청했다. 애플 신청 건은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한미 관세 협상과 물려 예전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안보 문제를 최우선으로 살펴보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구글 지도와 어스 등 구글의 공간정보 서비스가 그동안 보안시설 노출 문제로 여러 국가에서 구설에 휘말렸던 점을 고려하면 안보 측면에서는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방부가 구글의 위성지도 서비스인 구글 어스에 노출돼 있는 국가 주요 안보시설에 ‘저해상도 처리 요청’을 했지만 3년 넘게 구글 측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단순한 지도 서비스 편의 향상이 아닌, 위치 기반 광고, 자율주행 등 수익 사업 확대를 위한 전략적 요구라며 우리나라 정부의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안정상 중앙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한국은 타국과 안보 현실이 다르며 국내에서 생성된 정보는 국민의 세금으로 구축된 공공 자산인 만큼 정보주권 차원에서도 정부가 이를 통제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 편의성 향상’, ‘산업 혁신 유도’ 등 구글의 명분은 설득력이 부족하며 이미 국내 기업과 일부 해외 기업은 2만5000대 1 축척 지도만으로도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도 반출을 허용할 경우 애플·바이두·글로벌 완성차 업체 등 해외 기업들의 유사 요청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국내 공간정보산업 생태계와 중소기업 경쟁력을 급격히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 교수는 “국내법 회피와 세금 부담을 피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다”며 “고정밀 지도 반출은 국내 서버 구축이 전제되지 않는 한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고 강조했다.
구글 지도 반출 이슈는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언급됐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글의 지도 반출 시도에 대해 “안보 우려 때문에 수차례 불허한 내용”이라며 “미국무역대표부(USTR)이 공정밀 지도를 무역장벽이라고 주장하며 외교적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배 후보자는 “국가 안보 측면에서 신중하게 논의하고 결정할 일”이라고 답변했다.
업계의 반대와 달리 국내에서도 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제한의 실효성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상업용 위성 서비스 확산으로 이미 고해상도 한반도 위성 이미지가 상업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안보 논리의 정책적 타당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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