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LG전자가 유럽 중저가 가전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 현지 업체와 제품 기획 단계부터 협력하는 공동개발 모델을 본격 가동했다. 기존의 단순 생산 위탁 방식(OEM)을 넘어 기획부터 설계, 제조까지 함께하는 JDM (Joint Development Manufacturing) 방식을 도입한 것은 LG전자 가전사업에서 이례적인 행보다. 이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도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려는 전략적 시도로 해석된다.
15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중국의 대표 가전업체인 스카이워스, 냉장고 제조 전문기업 오쿠마와 손잡고 중저가형 드럼세탁기와 냉장고 신제품을 공동 개발했다. 이들 제품은 이르면 7월 말 유럽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제품 가격은 약 500달러(한화 약 70만원) 수준으로 책정됐으며 이는 유럽에서 판매되는 평균 중국 중저가 제품(400달러 수준)에 견줘 LG 브랜드의 프리미엄을 감안한 절충 가격이다.
기존의 OEM 방식은 LG가 직접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만 외부업체에 위탁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번 협력에서는 기획·설계부터 LG와 중국 업체가 공동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제품에는 LG전자 브랜드가 부착되며 품질 기준과 핵심 기술은 LG가 주도하되 생산 공정과 원가 절감, 물류 최적화 등은 중국 측의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글로벌 가전 시장, 특히 중저가 세그먼트에서 LG전자가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 조치로 해석된다. LG전자가 이처럼 자체 브랜드로 JDM 제품을 유럽 시장에 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G전자는 이번 협력 모델을 테스트베드로 삼아 제품의 시장성과 반응을 면밀히 분석한 뒤, 냉장고·세탁기 외에도 에어컨, 전자레인지, 청소기 등 다양한 품목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동시에 유럽뿐 아니라 중국 내수시장,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다른 가격 민감형 시장으로도 JDM 협력 모델을 확대할 예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저가 가전 시장은 전통적으로 중국 로컬 브랜드의 강세가 두드러졌지만 LG처럼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진 글로벌 브랜드가 가격을 낮추고 진입하면 상당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브랜드 신뢰와 가성비가 동시에 작동하는 시장에서 LG의 중저가 전략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LG전자의 행보는 경쟁사인 삼성전자와도 뚜렷이 다른 전략으로 읽힌다. 삼성은 아직까지 중저가 시장에서 자사 주도 개발·생산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인도 등 현지 거점 생산으로 원가를 줄이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반면 LG는 기획·설계 주도권은 유지하면서도 협력사의 생산·공급망을 아예 초기에 끌어들여 원가절감 효과를 극대화하는 모델로 차별화를 꾀했다. 이는 최근 글로벌 공급망이 급변하면서 생산 탄력성과 지역 맞춤형 전략이 요구되는 시대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그간 유럽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 중심의 전략을 구사해왔다.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서는 초고가 제품 중심으로 매출을 확대해왔지만 중남부 유럽과 동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현지 브랜드에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따라 이번 JDM 방식의 중저가 라인업은 LG가 프리미엄 이미지 손상 없이 시장 저변을 넓히는 실험적 모델이 될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두 마리 토끼' 전략은 고위험-고수익 구조이기도 하다. 품질 논란이나 브랜드 희석 우려가 따라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획과 품질 관리를 LG가 주도하고 브랜드 관리도 병행한다면, 긍정적인 소비자 반응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가 유럽 중저가 시장을 겨냥해 중국 업체와 설계 단계부터 협업하는 새로운 JDM 모델을 도입한 것은 글로벌 가전 전략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기획은 LG, 생산은 현지'라는 실용주의 협업 모델은 가격경쟁력이 중요한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관건은 제품 품질, 브랜드 이미지 유지, 현지 반응이다. 이번 유럽 시장 출시는 향후 글로벌 중저가 가전 시장에서 LG전자의 점유율 확대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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