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패권 전쟁이 심화하며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내 산업 혁신 동력을 책임지는 중견·중소·스타트업·벤처기업은 한국 산업의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요소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국내 산업 혁신 지표를 형성하고 경제 역동성 엔진 역할을 하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 과정과 리스크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스경제=김종효 기자] 인공지능(AI) 기술이 산업과 일상 전반에 걸쳐 혁신을 주도하는 가운데 AI 연산 핵심 동력인 AI 반도체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최전선에 서 있다.
이 격전지에서 국내 AI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딥엑스(DEEPX)는 최근 5년간 국가 연구개발(R&D) 자금 수주 1위를 기록하며 그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딥엑스의 기술력과 미래 비전이 국가적 차원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자본과 긴 개발 주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정부의 대규모 R&D 지원은 딥테크 스타트업에게 생존과 핵심 기술 개발에 필수적인 자양분 역할을 한다. 딥엑스에게도 R&D 지원은 단기적인 상업적 성과 압박 없이 기술 혁신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으며 궁극적으로 '초격차 기술' 확보 원동력이 되고 있다.
딥엑스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프로스트&설리번으로부터 '글로벌 AI 반도체 산업 부문 올해의 기업상'을 수상하며 테슬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세계 유수 기업들이 초기 성장 단계에서 받았던 권위 있는 상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런 외부 기관의 객관적 평가는 딥엑스의 혁신성과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이고 글로벌 파트너십 확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 'MINDS' 프로그램에 첫 번째 코호트 수상 기업으로 선정된 것 역시 딥엑스 기술의 실질적인 산업 및 사회적 영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또한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과 협력해 개발한 엣지 AI 칩 기반 로봇 비전 AI 솔루션 성과는 딥엑스 기술의 현장 최적화 및 실효성을 증명했다.
클라우드 기반 AI 한계를 극복하고, 기기 자체에서 AI 연산을 수행하는 온디바이스 AI는 에너지 효율성, 데이터 보안, 실시간 처리 능력 면에서 미래 AI 시장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딥엑스는 고성능, 저전력 AI 반도체 솔루션을 통해 온디바이스 AI 시대를 선도하며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AI 활용을 촉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딥엑스는 IBM 왓슨 연구소 방문 연구원, UCLA 박사 졸업, 시스코 시스템즈, 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에서 시스템 반도체 전문가로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김녹원 대표가 2018년 설립했다. 김녹원 대표는 이들 기업에서 배운 시스템 반도체 개발 방법론을 딥엑스에 '이식'했다고 언급했다. 딥엑스의 기술력이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개발 노하우와 베스트 프랙티스가 융합된 결과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불모지'로 불리는 현실을 극복하고 AI 시대에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이겠다는 비전으로 딥엑스를 창업했다. 실리콘밸리 수준의 시스템 반도체 기술력을 국내에 이식하고 AI 연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고성능·저전력 AI 반도체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딥엑스의 핵심 비전은 AI 연산 처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AI 활용을 촉진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물리 보안, 로봇, 가전, 스마트 모빌리티, 스마트 카메라, 사물AI, 공장 자동화, AI 서버 등 다양한 엣지 디바이스 및 응용 제품에 AI를 저전력, 고성능, 저비용으로 구동할 수 있는 AI 반도체 제품군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왔다. 김 대표는 “딥엑스의 AI 반도체 기술이 ‘작고 저렴한데 정확도는 GPU와 흡사하거나 이를 상회한다’고 설명했을 때 초기에는 ‘사기꾼’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만큼 딥엑스는 기존의 AI 반도체 시장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시도했다.
딥엑스는 고성능 GPU가 아닌 '엣지 디바이스 시장' 의 특성(고객 맞춤형, 저전력, 저비용)에 최적화된 NPU(신경망처리장치)를 개발함으로써 엔비디아와 같은 기존 강자들과 직접 경쟁하기보다 '전혀 다른 시장을 노릴 수 있는 장점'을 확보했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전략적 포지셔닝으로 평가된다. 기술적 난관을 돌파하며 시장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기존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적중한 것이다.
딥엑스의 핵심 경쟁력은 엣지 AI 환경에 최적화된 NPU 설계 기술에 있다. 1세대 엣지 AI 반도체인 'DX-M1'은 M.2 2280 규격의 칩으로 25 TOPS(톱스, 1초에 1조회의 연산을 수행하는 단위)의 성능을 제공한다.
이 제품은 AI 가속기 최대 난제인 발열 문제를 해결하는 딥엑스의 기술 우위를 증명했다. 딥엑스는 '버터 벤치마크' 실험을 통해 DX-M1의 압도적인 저전력 및 발열 제어 기술력을 직관적으로 입증했다. 30~36°C에서 녹는 버터를 칩 위에 올려놓고 객체 인식 AI 알고리즘(Yolo5s)을 구동했을 때, 경쟁사 제품들은 버터가 녹은 반면 DX-M1은 버터가 녹지 않았다. Yolov7과 같은 더 복잡한 알고리즘에서도 DX-M1은 경쟁 제품 대비 20~40°C 낮은 온도를 유지했으며 140°C의 극한 온도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했다. '버터 벤치마크'는 MLPerf와 같은 표준 벤치마크는 아니지만 그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특성 덕분에 딥엑스의 핵심 기술 우위인 저전력, 저발열를 비전문가에게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강력한 마케팅 도구로 작용했다.
엣지 디바이스에서 발열이 배터리 수명 단축 및 성능 저하로 이어지는 주요 문제라는 것을 고려하면 딥엑스의 솔루션은 시장의 핵심 니즈를 해결하고 있으며 딥엑스의 기술이 실제 사용 환경에서 얼마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DX-M1은 엔비디아의 GPU 기반 엣지 솔루션인 '젯슨 오린' 플랫폼 대비 전력 효율은 약 10배, 가격 대비 성능 효율은 약 20배 우수하다. DX-M1의 설계 면적과 제조 단가는 경쟁사 대비 3분의1 수준이어서 TCO(총 소유 비용)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즉 딥엑스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경쟁하지 않고 보완하려 한다'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기존 시장의 빈틈을 공략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DX-M1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양산 체제에 돌입했으며 수율 94%를 목표로 하고 있다. OSAT 파트너사들과 협력하여 다양한 응용 분야에 맞는 칩 패키지를 다변화하며 제품 단가를 최적화하고 품질을 극대화하고 있다.
딥엑스의 NPU는 고객 맞춤형 AI를 구현할 수 있는 최적화 설계를 특징으로 한다. 자율주행차, 드론, 가전, 보안·감시 카메라 등 다양한 엣지 디바이스 응용 분야에서 고객의 애플리케이션과 AI 알고리즘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 가능하다. 시장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고 AI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접근 방식이다.
김녹원 대표는 “딥엑스가 NPU 분야에서 엔비디아, 퀄컴, 인텔보다 더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며 딥엑스의 독보적인 기술력과 지적 재산권 확보 노력을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특허는 기술 보호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라이선싱 수익 창출 기반이 되며 경쟁 기업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중요한 해자(moat) 역할을 한다.
AI업계 관계자는 “기술 혁신과 지적 재산권 확보는 딥엑스가 'AI 시대의 퀄컴이자 ARM'이 되겠다는 장기적인 비전을 뒷받침한다. 기술 혁신을 통해 시장을 선도하고 그 기술을 지적 재산권으로 보호하며 미래 사업 확장의 토대를 다지고 있다”며 “이런 배경은 딥엑스가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불모지에서 과감한 경영 전략을 펼치고 초격차 기술을 추구할 수 있었던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창업자의 글로벌 안목과 경험은 딥엑스의 기술적 지향점과 혁신 속도를 결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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