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지난해 2월 윤석열 정부의 의대증원 2000명에 반발해 '동맹 휴학'에 나섰던 의대생들이 12일 수업복귀를 선언한데 이어 전공의들도 병원 복귀를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5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정갈등이 해소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의대생과 전공의가 복귀하려면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해 특혜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의대생 '복귀 선언' 이어 전공의도 복귀 잰걸음
전공의 대표 "환자들이 겪었을 불안함…마음 무거워"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12일 국회 상임위원회,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수업 복귀를 선언했다.
이들은 "국회와 정부를 믿고 학생 전원이 학교에 돌아감으로써 의과대학 교육 및 의료체계 정상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거듭된 복귀 호소에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해 온 의대생들이 윤석열 정부의 의대증원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한지 509일 만에 복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태 해결 기대감이 커진데다 유급 시한이 다가오자 전격 복귀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의대생들뿐만 아니라 전공의들도 복귀를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소위 '강경파'로 불리던 박단 전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물러나고 소통을 강조하는 한성존 신임 비대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내부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달 초 설문을 통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료개혁 실행방안 재검토, 입대 전공의 등에 대한 수련 연속성 보장 등의 복귀 등 '선결 조건'을 제시하며 복귀를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12일에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만나 국민 건강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양 단체는 간담회 후 "전공의 수련에는 정부의 각별한 행정·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면서도 "(의료 공백)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도모하고, 양질의 의료를 제공해 국민 건강을 수호하고자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한성존 비상대책위원장은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중증·핵심의료 재건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수련 환경 개선과 제도적 보완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한성존 위원장은 "1년 4개월간의 무자비한 폭격이 지나간 뒤 주변을 돌아보니 자랑스러웠던 대한민국 의료는 무너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며 "환자들의 불안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고 머리를 숙였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그동안 수차례 만나면서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했다고 믿는다"며 "이런 대화를 이어가면서 신뢰 관계를 더 강화해 나가면서 소통의 폭을 넓혀가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대전협은 오는 19일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다시 한번 전공의들의 중지를 모을 계획이다.
의대생 교육 정상화까지는 '첩첩산중'
교육부 "의대 학사유연화 종합적으로 검토" 기존 입장 선회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의 모집 공고에 지원을 하면 되므로 복귀가 용이하지만 문제는 의대생들이다. 학사일정, 형평성, 국가고시 응시 문제 등 곳곳에 난제가 남아 있어 의대 교육의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 의대생 복귀 선언으로 학교로 돌아올 학생 규모는 약 8000여명이다. 교육부가 마지막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던 4월30일까지 복귀하지 않았던 유급 대상자로, 의대생 1만9475명 중 8350명(42.8%)이 해당한다.의대는 학사 운영이 1년 단위로 이뤄져 1학기 유급 조치를 받으면 원칙적으로 내년에나 복학할 수 있다.
하지만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와 의대 학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지난 4월 "이미 1학기 교육과정이 끝난 후라 2학기에 별도 교육 과정을 만들 수는 없다"고 못 박았고, 교육부도 수차례 "학사 유연화 조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즉, 의대생들이 2학기에 복귀하기 위해선 학사 일정 조정과 관련된 논의가 선행해야 한다.
이에 의대 학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는 1학기 유급은 원칙적으로 완료하고, 방학이나 계절학기 등을 모두 활용해 교육의 질적 하락이나 총량의 감소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렇게 할 경우 이론 교육은 가능하지만 실습 중심의 본과 교육은 조정이 쉽지 않다. 게다가 본과 4학년은 오는 9월 예정된 의사 국가고시 응시 일정을 맞추려면 추가 응시 기회 등 별도 지원이 필요하다.
일단 교육부는 14일 의대생들을 위한 학사 유연화 필요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면서 '학사유연화 불가'에서 한발 물러섰다.
차영아 교육부 부대변인은 이날 교육부 정례브리핑에서 학사 유연화 대해 "시기 등은 고려할 사항이 종합적으로 많고 대학별 복귀상황 여건이 다른 걸로 안다"며 "이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주 말씀드린 입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봐야하는 단계라 한다, 안 한다 딱 잘라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기 등을 포함해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 부대변인은 먼저 복귀한 의대생들에 대한 보호 조치와 관련해서는 "보호 조치는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수사의뢰 했다"며 "이 같은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서울시의사회 "의정협의체 구성해야"
의대 증원에 반대해 집단 휴학을 한 의대생들이 복귀를 선언하자 서울시의사회가 환영의 뜻을 밝히며 전공의 복귀를 논의할 의정 협의체 구성 등을 촉구했다.
서울시의사회는 14일 성명을 내고 "의료 정상화를 향한 진정한 전환점"이라면서 "의정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의료체계를 재건할 수 있는 진정한 전환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의사회는 "의대생들이 어떠한 불이익 없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서울시 소재 의과대학들과 협력해 학사일정 조정, 행정적 보호 조치, 심리적 안정망 구축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공의)수련 복귀의 조건과 방향을 논의할 정부·의료계 간 실질적 협의체 구성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면서 "대한의사협회(의협)이 의료계 종주 단체로서 사직 전공의들의 희생에 가까운 투쟁이 헛되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의료정책 결정 과정의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정책은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수립돼야 한다"며 "젊은 세대 의료인들의 절박한 외침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필수의료 강화, 지역의료 문제 해결 등 구조적 개혁을 위해 지속적으로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환자단체 "의대생·전공의 복귀 반대 안해…조건 없이 돌아와야"
환자 단체는 의대생,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이들이 자발적으로 떠난 만큼 조건 없이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10개 단체가 모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발적 의사에 따라 사직·휴학했다고 주장하면서 1년 5개월 동안 의료와 교육 현장을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은 조건 없이 복귀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복귀한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특혜성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발적으로 환자를 위해 돌아온 게 아니라 끝까지 복귀하지 않다가 정부의 특혜성 조치에 기대 돌아온 전공의·의대생이 더 우대받는다면 이는 정의와 상식에 반한다"며 "복귀는 조건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제 더는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를 겪고 싶지 않다"며 '필수의료 공백 방지법' 제정도 촉구했다.
이어 "2020년 전공의 집단행동 당시 필수의료 행위는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지난해 전공의 집단 사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환자들이 가장 시급히 원하는 법률은 필수의료 공백 방지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료는 특권이 아니고, 환자 없는 의료는 존재할 수 없다"며 "새 정부는 '환자 중심 의료개혁'을 반드시 실현하고, 의정 갈등 피해 당사자인 환자에게도 제도적, 입법적 의견을 전달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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