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원 칼럼] 예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정혜원 칼럼] 예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문화매거진 2025-07-14 15:03:33 신고

3줄요약
▲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직전인 4월 말에 그리던 그림. 사실 완성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완성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냥 공개한다. 돌이켜보면, 반대로 완성이라고 우겼던 작품이 오히려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했다 / 그림: 정혜원
▲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직전인 4월 말에 그리던 그림. 사실 완성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완성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냥 공개한다. 돌이켜보면, 반대로 완성이라고 우겼던 작품이 오히려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했다 / 그림: 정혜원


[문화매거진=정혜원 작가]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적어도 두 번은 반드시 기고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었는데, 당시 나는 인생의 큰 전환기를 지나고 있었다. 삶의 방식을 바꾸고 독립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프리랜서로 사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 달에 두 번은커녕 한 번 기고하기도 벅찼다. 칼럼을 아예 거르는 달도 생겼다.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자기 합리화를 해 본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그동안 정말이지 많은 일이 있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두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고, 마침내 독립하여 고시원에서 생활 중이다.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와중에, 예상에도 없던 번역 일감이 연달아 들어와 자투리 시간까지 모두 번역에 쏟아부어야 했다. 모든 에너지가 먹고사는 일에 투입되어, 정작 힘들다는 감정을 떠올릴 에너지가 없었다. 

그나마 약 2주 전, 쌓인 번역 일들을 얼추 마무리하고 나니 조금 숨통이 트였다. 이제 새벽에 일어나서 꾸역꾸역 번역을 하다가 출근 시간에 맞춰 부리나케 뛰쳐나가지 않아도 된다. 저녁에 허둥지둥 고시원으로 돌아와 번역 몇 줄 더 하고 자겠다고 진땀을 빼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칼럼을 쓸 만한 물리적인 시간도 확보되었다.

하지만 두 달 넘게 직장 일과 프리랜서 일에 이중으로 치여 살았더니 완전히 방전되고 말았다. 글이든 그림이든, 창작 따위는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OTT 사이트에서 40부작, 60부작짜리 드라마를 아무 생각 없이 연달아 보며 비로소 찾아온 여유 시간을 만끽했다. 마음 한편에는 칼럼을 써야 한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무거운 짐이 놓여 있었지만, 그래도 그간 본의 아니게 너무 열심히 살았으므로 당분간은 그 짐 덩어리들을 무시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그런데 그 ‘당분간’이라는 기간이 꽤 길어지다 보니 슬슬 면죄부의 효력이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이제 정신을 다잡고 ‘예술가 칼럼’이라는 것을 다시 써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반드시 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쓰고야 말겠다고 다짐했고, 오늘이 바로 그 ‘이번 주말’이다. 이미 일요일 정오를 훌쩍 넘겼다. 지금 당장 쓰지 않으면 이따가는 더 손대기 싫을 테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이번 주말이 속절없이 흘러가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명색이 ‘예술가 칼럼’인데, 지금의 내 삶은 예술과 거의 아무런 접점도 없다. 물론 번역도 일종의 예술이고, 실제로 그 성과로 예술인 인증을 받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미술 작가로서 미술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내내 삶에 치여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미술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내게 이 칼럼을 쓸 자격이 있을까?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의문이 묘하게 죄책감을 자극한다.

글이 잘 써지지도 않고 마음이 내키지도 않지만, 일단 스스로와 한 다짐을 지키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내 경험상, 글이 써지지 않아도 일단 써야 하고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도 일단 그리는 게 맞다. 그래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다음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해도.

원래 나는 글을 쉽게 쉽게 쓰는 사람이 아니다. 항상 어떻게 하면 더 단정한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어 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노력이 전부 부질없게 느껴진다. 오히려 너무 반듯한 모습만을 내보이려는 태도가 나를 너무 재미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로써 숙제 하나를 무사히 해치웠다. 마음이 조금 가뿐해졌다. 이런 나지만, 다음 칼럼에서는 조금이라도 예술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