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고산지대가 들썩인다. 지리산 정상 인근에서 주황빛 야생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절벽과 능선 사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에서 피어난 이 꽃은 바로 '날개하늘나리'다. 한때는 멸종된 줄 알았던 귀한 존재다.
산에 피는 나리꽃 중 가장 늦게 피는 종으로, 올해 7월에 개화 소식이 전해졌다. 기상청 관측상으로는 폭염 경보가 이어지는 요즘,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산지대에서 극소수만 피어난다. 고도 1000m 이상의 바위 지대,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이어서 전문가들이 수색 끝에 개화를 확인했다.
하늘을 향해 피는 꽃, 날개하늘나리
날개하늘나리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에서 수평으로 퍼진 넓은 날개 모양의 잎과 하늘을 향해 피는 종 모양의 꽃이 이름의 유래다. 꽃은 주황빛 바탕에 자주색 반점이 박혀 있다. 꽃잎 가장자리는 살짝 말려 있고, 위로 활짝 열리며 피어난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하늘을 향해 피는 꽃'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나리꽃류가 아래로 피지만, 날개하늘나리는 하늘을 향해 꽃을 든다. 이 모습 때문에 '하늘을 보는 백합', 혹은 '산속의 별꽃'이라는 별칭도 붙는다.
원래는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일부 고산 지역에 자생했지만, 1990년대 이후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학계에서는 사실상 멸종된 것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이후 2007년 지리산에서 다시 발견되면서 존재가 재확인됐고, 2012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공식 등록됐다.
분포지는 지리산·덕유산 일대, 특히 인적이 거의 없는 바위 지대나 너덜지대에 집중돼 있다. 일반인이 찾는 등산로에서 발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 다시 포착된 날개하늘나리
올해 지리산에서는 7월 초순부터 개화가 관측됐다. 국립공원공단 생태보전부에 따르면, 해발 1200m 이상 바위 지역 3곳에서 총 15개체가 개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작년보다 개체 수가 다소 증가한 수치다. 평소보다 강수량이 적고,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지만, 뿌리가 깊고 생명력이 강한 개체들이 일부 살아남아 꽃을 피운 결과다.
이 꽃은 6~7월에만 피며, 개화 기간도 길지 않다. 평균 1~2주의 짧은 기간 동안 꽃을 맺고, 열매를 남긴다. 씨앗의 발아율도 매우 낮고, 주변 식생 조건이 까다로워 인공 증식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에 확인된 개체들은 대부분 기존에 발견된 서식지 인근에서만 자생하고 있어 유전적 다양성도 낮은 상황이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날개하늘나리는 학계와 생태 보전 커뮤니티에서 고산 생물다양성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발견 시에는 가만 두는 것이 원칙
날개하늘나리는 한반도 남부 고산지대 생태계의 척도처럼 여겨진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절벽과 능선에만 자라는 특성상 등산객의 영향 자체는 크지 않지만, 환경 변화에는 매우 취약하다.
특히 산불, 가뭄, 토양 유실 같은 자연재해가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기후변화로 고산지대에도 평년보다 이른 고온 현상이 찾아오면 생장 주기가 꼬이고, 개화 시기도 단축된다. 인간의 무분별한 채집도 여전히 위협 요인 중 하나다. 자생지 정보가 유출돼 희귀 식물을 채취해 가는 사례도 과거 존재했다.
이런 이유로 관련 기관에서는 서식지 위치를 비공개로 유지하면서, 철저히 통제된 범위에서만 조사와 보호 활동을 진행한다. 일반 시민들은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간접적인 관심과 후원, 신고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등산 중 희귀식물로 의심되는 자생종을 발견했다면, 건드리거나 촬영 위치를 공개하지 말고, 국립공원공단에 위치만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SNS를 통해 위치를 알리는 것은 오히려 불법 채취를 유도할 수 있다.
또한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 고산 생물은 다른 생물보다 더 빨리 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무분별한 산림 훼손을 막는 행동 역시 멸종위기종 보호의 일환이 될 수 있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