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인사청문회 슈퍼위크가 시작됐다. 이재명 정부의 첫 경제사령탑으로 지명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본격적인 검증대에 오른다. “경제 파이를 키우겠다”는 비전은 분명하지만, 시장이 움직이기 위해선 구체적인 실행 구조가 뒷받침돼야 한다. 세수 결손이 3년 연속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이번 청문회는 단순한 선언에 그칠지, 실현 가능한 설계로 이어질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다.
◇‘예산 기술자’ 구윤철, ‘산업 설계자’ 능력 발휘할까
구윤철 후보자는 기재부 예산실장과 국무조정실장을 거친 정통 관료다. 예산 편성과 정책 조정 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이지만, 지금 그에게는 예산 기술자를 넘어 ‘산업 전략의 설계자’로 전환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그는 지명 직후 “경제 파이를 키워 세수를 늘리겠다”고 강조하며 AI와 데이터 기반 산업을 중심에 둔 신성장 전략을 내세웠고, 정부는 100조 원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선언만으로는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 확장 재정 기반의 성장 전략은 설계가 정교하지 않으면 재정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 세입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 정부 지출을 확대하면 단기 재정 수지 악화는 불가피하고, 신성장 산업에 대한 투자가 당장의 세수로 연결되기도 어렵다. 성장을 명분 삼아 재정을 풀더라도 그것이 실제 세입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정책 설계의 정합성과 실행력이라는 구조적 기반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장 전략 조건, 비전 아닌 실행 로드맵
시장과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비전’이 아니라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실행 구조다. “경제 파이를 키우겠다”는 말이 실질적인 정책이 되려면, 재정 운용의 현실성, 민간 투자 유인책, 단기 재정과 장기 산업 전략의 접점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우선, 세수 결손이 반복되는 가운데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설계가 요구된다. 국채 발행이나 기금 활용에 의존할 경우 금융시장 불안을 자극할 수 있고, 세입 확대를 위한 세제 개편이나 비효율 예산 구조조정이 동반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은 담보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정부가 제시한 확장 전략에는 이런 조달 구조가 빠져 있다.
여기에 민간의 실질적 참여를 유도할 정교한 유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술과 자본을 가진 기업들이 정책 방향에 호응하려면, 단순한 세제 혜택이나 규제 완화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가 초기 시장의 위험을 분담하거나, 전략 산업의 수요를 보장해 주는 식의 정책 메커니즘이 마련돼야 한다. 정책 신뢰가 낮거나 민간이 구조적 보완책을 체감하지 못하면, 투자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울러 재정 운용과 산업 전략 간의 시간 차를 조율할 정책 설계가 중요하다. 당장 필요한 것은 세입 보강이지만, 장기적으로는 AI·데이터 산업 중심의 생산성 향상이 세수 기반을 뒷받침해야 한다. 단기 안정과 장기 전략이 충돌하지 않도록 속도와 순서를 조율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제시하는 설계력이 없다면 전체 전략은 방향을 잃게 된다.
이 모든 요건이 맞물릴 때, 비로소 “경제 파이를 키우겠다”는 말이 구조화된 실행 전략으로 전환된다. 지금 시장은 철학이 아니라 구조를 묻고 있다.
◇민간 출신 대거 기용…정책 동력 vs 구조적 리스크
이재명 정부는 이번 내각에 민간 출신 인사들을 대거 발탁했다. 산업 현장에 대한 이해도와 기술 전문성이라는 강점이 있는 한편, 정책 중립성과 공정성을 둘러싼 구조적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후보자는 두산에너빌리티 부사장 출신으로, 정부 에너지 정책과의 이해관계 충돌이 제기된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후보자는 네이버 대표 출신으로,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하겠다고 밝혔지만 플랫폼 규제 환경에서 완전한 거리두기가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후보자는 LG AI연구원장에서 바로 입각을 시도해 ‘회전문 인사’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신성장 정책의 실행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담당할 정책 분야와 과거 경력이 직접 맞물려 있는 만큼, 그 교차점을 투명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정책 설계의 공정성과 중립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민간과의 접점은 자산이 될 수 있지만, 공공성과의 균형이 무너지면 곧바로 리스크로 전환된다. 청문회는 바로 이 균형을 가늠하는 자리다.
◇정책 실종, 정쟁만 남은 청문회장
정작 청문회장은 더 이상 정책 실행 능력을 검증하는 무대가 아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후보자는 강남 아파트 전세 계약 구조로 비판을 받고 있고, 이진숙 교육부 후보자는 학력·경력 허위 기재 의혹에 휘말렸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후보자에 대해서는 코로나19 방역 정책의 공과를 두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당 내부에서 ‘정무 낙마 리스트’를 따로 관리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청문회가 정책 검증이 아닌 정치공세와 개인 신상 털기로 흐를 경우, 구윤철 후보자의 구조 설계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경제팀의 전략이 구호에 그칠지, 실행으로 이어질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무대가 오히려 흐려지고 있는 셈이다.
◇실행 로드맵 없으면 시장은 멈춘다
이재명 정부 경제팀 앞에 놓인 과제는 분명하다. AI와 데이터 산업을 중심으로 한 신성장 전략을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고, 확장 재정 기조와 재정건전성 사이의 균형을 확보해야 하며, 민간 투자 유인과 세수 확장을 연결하는 정밀한 인센티브 설계를 완성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은 방향성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시장은 구호가 아닌 구조, 말이 아닌 설계를 본다.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설계가 있어야 정책은 신뢰를 얻는다. 단기 세수 부족과 장기 산업 전환이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구윤철 카드가 비전의 외침을 넘어 실행력 있는 설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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