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이재명 정부 1기 내각 인선을 둘러싼 인사청문회가 14일부터 닷새간 진행된다. 장관 및 기관장 후보자 16명이 대거 출석하는 이른바 ‘청문회 슈퍼위크’가 예고되면서, 정국은 또다시 인사 국면으로 급류를 탄다.
이번 청문회는 단순히 누가 낙마할지, 어떤 의혹이 제기될지의 차원을 넘어, ‘청문회라는 제도가 지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구조적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여야는 시작도 전에 정면 충돌했고, 유권자들은 낙마 여부보다 ‘검증 시스템의 신뢰성’을 묻기 시작했다. 시험대에 오른 것은 후보자가 아니라, 청문회 제도 그 자체다.
◇‘낙마 프레임’ 작동…강선우·이진숙·정은경 집중 타깃
청문회 전선의 최전방에는 여성가족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후보자들이 서 있다. 국민의힘은 강선우 여성가족부 후보자의 부동산 취득 과정과 이진숙 교육부 후보자의 학력 표기 문제, 정은경 보건복지부 후보자의 방역 행정 책임론을 집중 부각하며 자진사퇴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이 중 강선우 후보자는 지난 국회의원 재직 시절부터 부동산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진숙 후보자는 언론인 출신으로서의 경력 전환 시점과 관련한 ‘허위 이력’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정은경 후보자의 경우, 코로나19 시기 방역 당국을 이끈 상징적 인물인 만큼 공과에 대한 해석이 정쟁화될 가능성도 크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실관계가 불분명하다” “정치적 악의성이 짙다”며 적극 방어에 나섰지만, 이미 정무적 ‘낙마 적격 리스트’가 내부적으로 정해졌다는 분석도 정치권에선 공공연하다.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특정 후보를 정조준하는 방식은, 제도적 검증보다는 정치적 타격을 겨냥한 프레임 기획의 성격이 짙다.
◇사실상 무력화된 청문 시스템…“강행하면 끝”
청문회의 원래 취지는 국민 앞에서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과 정책 역량을 검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청문 구조는 국회가 채택한 보고서에 법적 구속력이 없는 ‘비동의형’ 시스템이다. 다시 말해, 국회가 반대해도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역대 정부 모두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장관을 임명한 사례가 누적되어 왔다. 이명박 정부 17명, 박근혜 정부 10명, 문재인 정부 35명, 윤석열 정부에서도 18명이 보고서 없이 임명됐다. 이처럼 보고서 채택이 무력화되면, 청문회는 실질적인 견제 장치라기보다 정치적 명분을 위한 ‘형식적 절차’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여당은 대통령의 인사권 수호를 명분 삼고, 야당은 낙마를 통한 정치적 승점을 노린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알 권리, 국정 리더십에 대한 실질적 검증은 뒷순위로 밀리고 있다. ‘검증은 요식절차, 결과는 정해져 있음’이라는 냉소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낙마가 기준이 된 시스템…정책 검증은 뒷전
청문회의 본질은 공직자의 자질과 전문성을 국민 앞에 검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도덕성·도덕적 비호감·여론 지형 등 비정형적 기준에 따라 낙마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잦다. 실체적 위법 여부와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부담된다’는 이유만으로 자진사퇴가 유도되거나 임명 보류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된다.
과거에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여론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낙마한 후보자는 셀 수 없이 많다. 이 과정에서 유능한 인재는 ‘검증이 아니라 망신주기’로 인식된 청문회를 회피하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공직 시스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손실로 이어진다.
나아가 정치권이 여론을 앞세워 낙마 기준을 자의적으로 설계하면, 신뢰할 수 없는 검증 시스템이 반복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공직자는 여론에 따라 탈락하고, 정무적 유불리에 따라 방어되며, 정작 국민은 정책 방향과 리더십 역량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가 고착된다.
◇정권 따라 바뀌는 원칙…청문회는 거울일 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문회 전략도 달라진다. 과거 야당 시절 국민의힘은 도덕성 검증을 명분 삼아 후보자 낙마를 유도했고, 여당이 된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후보자 방어에 집중하고 있다. 청문회가 일관된 원칙에 따라 운영되기보다는, 진영 논리에 따라 해석되고 소비되는 구조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이러한 전형은 뚜렷하다. 야당은 강선우·이진숙·정은경 후보자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고, 여당은 “정쟁성 신상털기”라며 전면 방어에 나섰다. 특히 여야 모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도 이를 ‘상황 변화’라고 설명할 뿐, 제도에 대한 반성과 개선 의지는 부족하다.
정치적 프레임의 전환이 거울처럼 반복되는 청문회는, 제도 자체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정권이 바뀌면 ‘문장은 그대로고, 주어만 바뀐다’는 냉소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도 설계가 아닌, 정치 전략의 일부로 청문회를 활용하는 한 그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개혁 논의는 무수했지만,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청문회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매 정권에서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도덕성과 정책 역량을 분리하는 이원 청문제도, 청문보고서 채택의 실효성 확보, 비공개 검증 항목 확대, 국회 인사청문회의 권한 강화 등을 제안해 왔다. 하지만 이들 개선안은 단 한 차례도 입법을 통과한 적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여야 모두에게 현재의 불완전한 청문회 구조가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인사권 보장을 우선시하며 개선에 미온적이고, 야당은 청문회를 낙마 전략의 무기로 삼기 위해 구조 유지를 선호한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은 반복되지만, 정작 책임지고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정치권 어디에서도 실현되지 않는다.
더욱이 같은 문제점이 반복돼도,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려는 후속 조치는 거의 전무하다. 이는 청문회가 정치적 활용도 측면에서 효용이 있음을 정치권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새로운 검증 구조는 가능한가
이제 필요한 것은 청문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검증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대통령의 인사권과 국회의 검증권 사이에 명확한 역할 분담과 균형을 설정하고, 특정 정권의 이해득실과 무관하게 공정하게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덕성 검증은 독립적인 공직윤리위원회나 윤리검증기구에서 사전 평가하고, 정책 역량은 국회에서 공개 청문회로 다루는 ‘이원화 구조’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또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력화되지 않도록, 대통령이 부적격 보고서에도 임명을 강행할 경우 그 사유를 국민 앞에 공개 설명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제도 설계는 단지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공직 사회에 ‘책임의 기준’을 정립하고, 유권자에게는 ‘검증된 국정 리더십’을 보장하는 구조로 작동해야 한다. 청문회는 낙마를 위한 절차가 아니라, 자격 있는 공직자에게 책임을 묻고 동시에 기회를 제공하는 공정한 제도여야 한다.
인사청문 슈퍼위크는 단순한 인사 검증 절차의 연속이 아니다. 각 후보자의 통과 여부를 넘어서, 청문회라는 제도가 과연 ‘검증의 무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치 이벤트로만 소비되고 있는가를 국민 앞에 드러내는 시험대다. 이번 슈퍼위크는 결국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유지될 수 있는가, 혹은 또 한 번 무너지는가의 갈림길에 있다. 그리고 그 시험대 위에 선 것은, 후보자가 아니라 바로 청문회라는 제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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