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컬트렌드] ‘케이팝 데몬 헌터스’ 흥행 이면에 드리운 K-콘텐츠 산업의 구조적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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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컬트렌드] ‘케이팝 데몬 헌터스’ 흥행 이면에 드리운 K-콘텐츠 산업의 구조적 한계

뉴스컬처 2025-07-13 15:52: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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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적인 것’이 통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하지만 그 정점이 애니메이션에서 확인되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바로 화제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가상의 K-POP 걸그룹이 낮에는 무대 위에서 글로벌 팬을 열광시키는 슈퍼스타로, 밤에는 서울을 배경으로 악마를 사냥하는 헌터로 활동하는 이중생활을 다룬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무대 위 아이돌의 생명력, 치열한 팀워크, 팬과의 연결고리, 음악을 통한 메시지 전달은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애니메이션 장르 특유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액션 활극이 가미돼 새로운 형식의 K-POP 서사를 만들어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단순히 ‘K-POP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K-POP의 감성과 한국적인 정체성’을 구현한 세계관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화면 곳곳에 한국의 정서를 세밀하게 녹여냈다. 한글 간판이 늘어선 골목, 새우깡과 컵라면이 진열된 편의점, 김치찌개 냄비가 끓는 분식집, 그리고 캐릭터들이 즐겨 찾는 국밥집까지 — 서울의 일상 풍경이 그대로 살아 숨쉰다. 단지 배경 장치로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들의 라이프스타일, 감정선, 그리고 극의 리듬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한국에 기반한 서사적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극 중 중요한 장면에서는 무속의식과 같은 한국 전통 주술 문화가 플롯의 중심 장치로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민속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악마를 사냥하는 과정에서의 정체성 문제, 영적 유산과 현대성의 충돌 등을 주제로 확장되며 깊이 있는 내러티브를 이끌어낸다.

캐릭터의 이름 역시 전원 한국식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들이 부르는 OST 또한 한국어 가사와 한국인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이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언어적 정체성과 음악적 뿌리를 명확히 고수한 전략적 선택이다. 결과적으로, 이 애니메이션은 형식은 글로벌하되, 내용은 철저히 한국적인 K-POP 감성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소니 픽처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소니 픽처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K-컬처를 전면에 내세운 이 프로젝트가 기획은 미국에서, 배급은 일본에서, 제작은 다국적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주요 제작진은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출신으로 구성돼 있고, 글로벌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플랫폼인 ‘크런치롤(Crunchyroll)’이 유통을 맡았다.

즉, 한국의 문화 코드와 감성이 핵심 원천이 되었지만, 그 콘텐츠를 상업적으로 완성하고 시장에 내놓은 주체는 한국 외부의 자본과 인프라다.

이는 현재 한국 콘텐츠 산업이 마주한 구조적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한국은 세계가 탐내는 ‘원천 콘텐츠’의 보고이지만, 정작 그 콘텐츠를 대형 프로젝트로 기획, 제작, 완주할 수 있는 산업적 체력은 아직 부족하다. 특히 장편 애니메이션, 세계관 기반 IP, 프랜차이즈 전략과 같은 고난이도 콘텐츠 분야에서는 글로벌 수준의 프로젝트를 자국 내에서 완성할 역량이 제한적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진=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진=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한국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을 가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성공의 시스템이 한국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산업계에 경고 신호를 보낸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오랫동안 외주 하청 중심의 구조에 머물렀다. 픽사의 CG, 일본의 세계관, 미국식 스토리텔링이 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한국은 풍부한 인재와 기술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프랜차이즈를 탄생시키지 못했다. 원천 IP를 기획하고, 이를 장편으로 개발하며, 팬덤을 유치하고, 유통망을 자체 구축할 수 있는 풀 스택 콘텐츠 산업 체계가 부재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 정책과 일부 대기업의 진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니메이션·세계관 콘텐츠는 투자 위험이 크고 수익 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외면받기 쉽다. 그러나 이 같은 구조가 계속된다면, 한국은 영원히 영감을 주는 나라로만 머물고, 콘텐츠 주권은 외부 자본에 의존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이제는 민관 협력 체계 하에서 장기적 투자와 제작 인프라 육성, 세계관 설계 전문가 양성, 글로벌 유통 채널과의 파트너십 강화 등 콘텐츠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K-POP, 드라마, 웹툰, 게임 등과의 IP 연계를 통해 한류 유니버스(K-Universe)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종합 스튜디오의 역할이 절실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POP을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기축으로 전환시킨 실험이다. 그리고 이 실험은 분명히 세계 시장에서 통했다. 그러나 이 성공은 ‘우리의 이야기’이면서도 ‘우리가 만든 결과물’은 아니다. 한국이 콘텐츠 아이디어의 원산지에서, 콘텐츠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려면, 지금이 그 체질 전환의 기회다.

한글 간판이 빛나고, 컵라면이 전투 식량이 되며, 국밥집이 전략 회의의 공간으로 등장하는 이 이야기 속 세계는 분명 한국적이다. 이제는 그 한국적 세계를 한국의 시스템으로 제작하고, 유통하고, 확장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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