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2025년 5월, 웸블리 스타디움은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의 감격적인 눈물로 물들었다. 구단 역사상 첫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린 FA컵 우승. 게다가 상대는 맨체스터 시티였다. 한 시즌 최고의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 감동의 결말은 유로파리그 참가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팰리스는 유럽 무대에서 ‘강등’됐다. 대신 그 자리는 노팅엄 포레스트가 차지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11일(현지시각) “크리스탈 팰리스가 유로파리그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컨퍼런스리그로 강등됐다. 그 자리는 노팅엄 포레스트가 대신하게 됐다”며, 그 배경에는 UEFA의 ‘멀티 클럽 소유 규정’이 있다고 전했다.
■ 사태의 핵심 인물, 존 텍스터
사건의 중심에는 미국인 사업가 존 텍스터가 있다. 그는 크리스탈 팰리스 지분 43%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며 동시에 프랑스 리그1 구단 올랭피크 리옹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UEFA 규정은 한 개인 또는 기업이 지배력을 가진 복수 클럽이 같은 유럽 대회에 동시에 참가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결국 UEFA는 텍스터가 두 구단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리옹이 리그 성적에서 우위였기에 유로파리그 출전권은 프랑스 클럽에 돌아갔다.
텍스터는 이에 대해 “나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UEFA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팰리스는 이 점을 끝까지 강조했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또 하나 있었다.
■ 3월 1일, 그 마감일을 놓쳤다
UEFA는 모든 멀티 클럽 구조 조정을 위한 시한을 3월 1일로 정해두고 있었다. 만약 이 시점 전에 지분 정리나 영향력 차단 장치가 완료됐다면, 팰리스는 여전히 유로파리그에 참가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팰리스는 이 기한을 넘기며 구조 개편을 완료하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같은 멀티 클럽 이슈를 안고 있던 노팅엄 포레스트는 달랐다. 구단주 에반젤로스 마리나키스가 소유한 또 다른 구단 올림피아코스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하자, 그는 포레스트 지분을 블라인드 트러스트에 맡기며 자신의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차단했다. UEFA는 이 같은 조치를 ‘규정 준수 의지’로 판단했다.
■ 팰리스가 놓친 타이밍, 포레스트의 로비
BBC에 따르면, 노팅엄 포레스트는 UEFA에 공식 서한을 보내 팰리스의 유로파리그 출전 자격에 의문을 제기했다. 팰리스 내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분노와 실망이 뒤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포레스트 입장에서는 스스로 규정을 지키며 출전권을 얻었다는 점에서 확고한 논리를 갖고 있다.
BBC는 “마리나키스는 트러스트 설정을 원치 않았지만, 규정 미준수 시 치를 대가를 알고 있었기에 결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 모든 과정은 향후 두 구단 간에 새로운 라이벌 구도를 예고하고 있다.
■ 텍스터의 지분 매각, 그러나 ‘늦었다’
상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텍스터는 6월 말 또 다른 미국인 사업가 우디 존슨에게 팰리스 지분을 약 1억9천만 파운드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팰리스 측은 이를 근거로 “리옹과의 연계는 없다”며 텍스터와의 단절을 강조했다.
이 매각 소식은 한때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됐다. 그러나 UEFA는 ‘3월 1일 이전’이라는 조건에 변함이 없었고, 지분 매각만으로는 상황을 뒤집기에 부족했다.
팰리스 내부에서는 “UEFA가 우리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벌써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퍼졌고, 이는 결국 현실이 됐다.
■ 마지막 희망이던 리옹의 강등마저 좌절
팰리스는 6월 말 리옹이 재정 문제로 프랑스 리그앙에서 강등당하자, 잠시 희망을 품기도 했다. 리옹이 강등되면 유로파리그 라이선스를 잃게 되고, 팰리스가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옹은 즉시 항소했고, 프랑스 축구 재정 감독 기관은 이를 받아들였다.
프랑스 리그앙의 방송 중계권 계약이 최근 DAZN과의 파기 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리옹 같은 대형 구단의 강등은 리그 전체의 흥행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리옹은 프랑스 1부 리그에 잔류했고, 유로파리그 참가 자격도 유지했다. 크리스탈 팰리스에게는 ‘게임 오버’였다.
■ 다음 수순은 스포츠중재재판소
현재 크리스탈 팰리스는 이 사안을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UEFA가 규정을 명확히 제시한 상황에서, 법적으로 결과를 뒤집기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FA컵 우승의 감동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복잡한 이해관계와 규정의 그물에 얽혀버렸다. ‘정당하게 얻은 유로파리그 출전권’이라는 팰리스의 자부심은 UEFA의 판단 앞에서 힘을 잃었고, 대신 노팅엄 포레스트는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됐다. 그리고 지금, 잉글랜드에는 또 하나의 ‘기묘한 라이벌전’이 싹트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Copyright ⓒ 풋볼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