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 잔의 소주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고된 하루를 위로하던 술잔, 수많은 한국인의 식탁을 함께했던 그 이름 ‘진로’. 그러나 2000년대 중반, 국민소주 진로를 키워낸 ‘진로그룹’은 한국 경제사에 기록될 몰락을 맞았다.
영화 ‘소주전쟁’은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재벌가의 영욕과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한 기업의 운명, 그리고 그 뒤에 감춰졌던 자본의 전쟁이 이제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진로그룹의 시작은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 장학엽 창업주는 ‘진천양조상회’라는 작은 양조장에서 출발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서울로 이전한 진로는, ‘희석식 소주’라는 새로운 기술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했다. 유리병에 담긴 투명한 소주와 두꺼비 캐릭터는 곧장 대중적 상징이 되었고, 1970년대엔 전국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
당시 소주업계는 춘추전국 시대였다. 전남을 중심으로 삼학소주가 세를 떨치던 가운데, 진로는 유통망 확보와 과감한 마케팅으로 ‘국민 소주’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특히 1976년 삼학의 납세증지 조작 사건은 진로에게 결정적 기회를 안겼고, 이후 30년 넘게 시장 1위를 수성했다.
하지만, 영원한 1위는 없었다.
1988년, 창업주 장학엽 회장이 은퇴하고 그의 아들 장진호가 36세의 나이로 진로그룹을 맡았다. 젊은 경영인의 감각과 추진력이 기대됐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주류를 넘어 광고, 제약, 건설, 유통 등 다양한 분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고, 그룹은 빠르게 재무 불균형에 빠져들었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진로가 소주를 팔아서 부동산 사업을 한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때 한국 사회는 외환위기를 맞고 있었다. 1997년 IMF 사태는 진로그룹의 마지막 숨통마저 끊었다. 주력사업이 흔들리는 사이, 은행권은 자금 회수를 시작했고, 2003년 진로그룹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이후 하이트맥주(현 하이트진로)가 3조 4100억 원에 진로를 인수하며, 그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화 ‘소주전쟁’, 현실을 꿰뚫은 자본주의 블랙코미디
영화 ‘소주전쟁’은 이 모든 과정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블랙코미디다. 재무이사 ‘종록’(유해진 분)과 글로벌 투자사 직원 ‘인범’(이제훈 분)이 주류 회사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치열한 수 싸움은, 실상은 2000년대 초 진로 인수전을 재해석한 것이다. 작품 속 종록은 위기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소주공화국'을 지키려 하고, 인범은 자본의 논리로 회사를 ‘정리’하려 한다.
감독은 "당시를 겪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코미디라기보다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진로 인수전은 국내외 사모펀드와 금융권, 주류업계 간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싸움이었다. 영화는 그 복마전의 한복판을, 위트와 풍자로 되살려냈다.
진로의 몰락은 업계의 ‘지각변동’…1강 체제에서 다극화로
진로그룹의 몰락은 단지 하나의 그룹 해체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주류 시장에서 진로는 단독 1위, 점유율 50%를 넘는 '절대강자'였다. 그러나 진로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유통망이 흔들렸고, 공급 불안과 브랜드 가치 하락은 전국 각 지역의 소주 브랜드들에게 '틈새시장'을 열어주었다.
실제 2003~2006년 사이, 지역 소주 업체들이 잇따라 약진하며 주류 시장은 ‘1강 다약’ 체제에서 ‘다극화 구조’로 전환되었다. 특히 부산의 ‘좋은데이(무학)’, 대전의 ‘O2린(선양)’, 광주의 ‘잎새주(보해)’ 등이 지역 소비자 정서를 앞세워 자리를 넓혔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계열의 ‘롯데주류’도 ‘처음처럼’ 브랜드를 론칭하며 본격적인 전국 소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동안은 진로를 인수한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가 치열하게 점유율 싸움을 벌이며 ‘소주 양강구도’가 형성되었다.
자본의 논리가 가져온 '브랜드의 재편'...소주는 누구의 것인가
진로 인수전은 당시 국내외 투자은행, 사모펀드, 식음료 대기업들이 총출동한 복합 금융 전쟁이었다. 골드만삭스, 칼라일그룹, KKR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는 진로의 부동산 자산과 브랜드 가치에 주목했다. 하지만 하이트맥주가 이를 제치고 인수에 성공한 배경에는 ‘주류 유통망의 시너지’와 '국내 소비자 정서와의 접점’이 큰 작용을 했다.
이는 산업 전반에 ‘전문 업종 간 통합’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제시했다. 이후 빙그레-OB맥주 분할, 롯데의 식음료 통합 등 다양한 ‘산업 구조조정’이 연쇄적으로 이어졌고, 주류 산업은 더 이상 지역기반보다는 브랜드 마케팅과 유통 주도권 중심의 ‘자본 게임’으로 재편되었다.
진로는 지금도 살아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로그룹’의 진로가 아니다. 하이트맥주와의 합병으로 재탄생한 ‘하이트진로’는 완전히 새로운 회사이며, 브랜드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 두꺼비는 여전히 라벨에 남아 있고, 희석식 소주의 방식도 여전하지만, 소비자들이 기억하는 ‘그 시절의 진로’는 사라졌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진로의 영혼은 사라졌지만, 육체는 팔려 남은 셈”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두꺼비 진로’는 단지 소주의 브랜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정서, 시대의 공기, 그리고 산업화 시대를 함께한 동반자였다. 그리고 진로그룹의 몰락은 단지 경영 실패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 경제 구조가 얼마나 외부 충격에 취약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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