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 소설가…디아스포라 풍경 그린 소설집 '벌집과 꿀' 국내 출간
"역사 속 폭력과 슬픔, 상실에 이끌려"…차기작은 "개가 화자인 모험소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인간은 다양한 면모를 품은 채 매일 같이 걸어 다니는 모순덩어리죠. 선하면서도 악하고, 완벽하면서도 결점투성이고, 절망에 빠져 있으면서도 기쁨으로 넘치는 존재입니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폴 윤(45)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길을 잃고 고통받는 존재다.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자신과 닮은 타인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서 친절하고 다정한 손길을 내민다.
폴 윤은 최근 서제인 번역가와 함께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자기 소설 속 인물들이 고통 속에서도 다정하게 행동하는 이유를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진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며 "인간은 모순덩어리"라고 표현했다.
폴 윤은 "제 작품은 인간 역사 속의 폭력과 슬픔과 상실 쪽으로 이끌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런 주제들을 어떻게 상반되는 것들과 병치함으로써 공존하게 할지, 균형을 맞출지 항상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련의 국제적 분쟁을 떠올려보면 요즘엔 작은 친절의 몸짓이 제게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며 "제 인물들이 다른 인물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그들에게 약간의 희망과 낙관을 건네주는 저만의 방식"이라고 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벌집과 꿀'은 2023년 미국에서 '더 하이브 앤드 더 허니'(The Hive and the Honey)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소설집으로, 7개 단편이 수록됐다. 미국에서 출판된 우수 단편소설집에 주는 스토리상(Story Prize)을 받았고, 미국 타임의 '2023년 최고의 책 10'과 뉴요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소설집은 러시아 극동 지방, 스페인, 에도 시대 일본, 미국 등 다양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공통적으로 한국계 이주민들이 등장하며 디아스포라(이산)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의 정체성을 연상시킨다.
외딴 고려인 정착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탈북한 여성이 북한에 두고 온 아들과 스페인에서 재회하는 과정을 담은 '코마로프', 조선인 고아 소년을 고국에 데려다주려 먼 길을 떠나는 사무라이 이야기 '역참에서' 등이다.
폴 윤 소설의 다른 특징은 시각적인 묘사가 매우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수록작 '보선'에선 한국계 청년 보가 충동적으로 사람을 때리는 장면과 권투 스파링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묘사되고, 보의 주먹을 매개로 두 장면이 서로 연결된다.
폴 윤은 "제 첫사랑은 회화였다"며 "지금도 소설을 쓸 때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먼저 캔버스의 작은 구석을 채운 뒤 나머지 부분을 채워나가듯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로 다른 장면이 연결되도록 묘사한 이유로는 "이야기 속의 그런 연결점은 마치 별자리를 만들어내는 일과도 같고, 제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폴 윤은 2009년 발표한 첫 소설집 '원스 더 쇼어'(Once the Shore)로 전미도서재단이 선정한 '35세 이하 작가 5인'에 이름을 올려 단숨에 주목받았다. 이후 구겐하임 펠로우십, 미국 예술문학아카데미 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최근 장편소설을 완성해 내년 미국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이 차기작을 "전 지구적 분쟁이 일어난 이후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모험소설"이라고 소개했다.
폴 윤은 "이 소설의 화자는 개"라며 "최근 관심을 가진 주제는 '어떻게 인간인 우리가 무대 중앙에서 내려가고 이 세계의 다른 존재들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런 관점을 어느 정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말이죠. 그 사실을 깨닫고 존중한다면, 아마도 세계는 더 나은 곳이 될 겁니다. 그래서 개가 화자로 등장하는 장편소설을 써 봤죠."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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