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날씨, 에어컨 아래에서 차가운 음식만 찾다 보면 탈이 나기 쉽다. 이럴 때는 속은 편하고 입은 시원한 냉국이 생각난다. 조선 궁중에서 여름 원기 회복을 위해 즐긴 ‘임자수탕’은 흔한 냉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진한 닭 육수에 볶은 참깨와 잣을 곱게 갈아 넣어 고소한 국물을 만들고, 오이와 표고, 부드러운 지단과 완자를 정갈하게 얹는다. 한 입 떠먹으면 입안은 시원하고 속은 든든해진다.
여름철 약해진 소화력을 보완한 냉국 음식
임자수탕은 깻국탕 또는 백마자탕으로 불리기도 했다. '임자(荏子)'는 흰 참깨를 뜻하며, 예로부터 보양에 좋은 재료로 여겨졌다. 조선시대 『동국세시기』에는 임자수탕이 여름철 별미로 소개된다. 국수에 호박과 닭고기를 넣고, 백마자탕에 말아 먹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동의보감』에는 흰깨가 허로를 보하고 오장을 윤하게 하며, 풍기를 풀고 열림과 변비에 좋다고 적혀 있다.
임자수탕은 여름철 약해진 소화력을 돕고 기력을 보충하는 데 알맞다. 어린 암탉(연계)을 푹 삶아 국물을 내고, 볶은 흰깨와 잣을 갈아 곱게 풀어낸다. 닭고기와 미나리, 오이채, 데친 버섯을 얹어 차게 내면 완성이다. 국수를 곁들이면 한 그릇으로도 충분하다.
볶은 참깨와 잣으로 완성한 깊고 고소한 육수
임자수탕의 핵심은 깊고 고소한 국물이다. 닭 뼈를 푹 고아 만든 육수에 볶은 참깨와 잣을 곱게 갈아 넣는다. 이때 육수는 한 번에 붓지 않고, 조금씩 부어가며 질감을 조절한다. 곱게 체에 밭치면 진한 두유 같은 고소한 국물이 완성된다.
닭고기는 결대로 찢어 간을 하고, 지단, 오이채, 표고버섯, 완자 등을 고명으로 곁들인다. 두부와 한우 분쇄육을 섞은 반죽은 전분과 달걀을 입혀 완자로 만든다. 모든 재료는 단정하게 썰어 올리고, 그 정성은 한 숟갈에 고스란히 담긴다.
참깨의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E는 두뇌와 피부에 좋고, 잣은 위를 편하게 해준다. 닭고기는 단백질이 풍부해 기운을 보태기에 알맞다. 소면을 함께 곁들이면 식사로도 충분하다. 시간이 들긴 하지만, 먹는 순간 몸이 먼저 알아챈다.
초복부터 말복까지 이어진 조선의 여름 식단
삼복은 초복, 중복, 말복으로 나뉜다. 하지 뒤 세 번째 경일이 초복, 네 번째는 중복, 입추 뒤 첫 번째 경일이 말복이다. 이 20일간은 여름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로, ‘삼복더위’라 불렸다.
조선 궁중에서는 이 시기마다 냉채와 보양식을 준비해 기력을 차렸다. 민간에선 삼계탕, 추어탕, 민물장어, 콩국수가 대표적인 여름 음식이었고, 궁에서는 얼음을 나눠주는 장빙고 제도도 운용됐다. 임자수탕은 바로 이 삼복 시기에 궁중에서 만들어진 보양식이다. 닭국물을 진하게 우린 뒤, 차게 식혀 내고, 간 깨와 잣으로 고소한 맛을 더했다. 높은 벼슬아치에게만 하사될 만큼 귀하게 여겨졌고, 말복 무렵이면 자주 올랐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