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를 없앨 수 있는 세상…SF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수확자' 시리즈 닐 셔스터먼 장편…10대들의 생존 투쟁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1∼4권 표지 이미지

[열린책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가까운 미래, 임신 중지(낙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격화한 끝에 내전이 벌어진다.

소모적인 싸움을 이어가던 양 진영은 가까스로 타협점을 찾는다. 임신 중지를 금지하는 대신 부모가 원하는 경우 13세부터 18세 사이 자녀를 '언와인드'(unwind·분해), 즉 세상에서 없애버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된다.

이 제도는 언와인드된 아이들의 장기를 타인에게 기증함으로써 부모들의 선택을 정당화해준다. 정부는 아이들이 죽은 게 아니라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의 몸 안에서 계속 살아가게 된다는 궤변을 내세운다.

16살 문제아 코너는 자기 부모가 자신을 언와인드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너는 가만히 앉아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몰래 집을 나선다. 18살이 되는 2년 동안 경찰에 붙잡히지 않고 살아남으면 언와인드를 피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미국 SF(과학소설) 작가 닐 셔스터먼(63)의 장편 '언와인드 디스톨로지'(전 4권·열린책들) 시리즈의 줄거리다.

이 소설은 부모의 의지로 자녀를 없앨 수 있다는 끔찍한 제도가 일상이 된 암울한 사회를 배경으로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코너는 여자친구인 아리아나와 여정을 함께하려 하지만, 출발하기 직전 아리아나가 변심해 결국 홀로 길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길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언와인드가 확정된 10대 친구들을 만난다.

충동적이고 문제투성이지만 정의감이 강한 소년 코너, 보육원 출신으로 정부의 예산 삭감 때문에 언와인드 대상이 된 리사, 이른바 종교적 '십일조'로 태어날 때부터 언와인드가 결정된 레브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청소년들이 이야기를 이끈다.

이 소설은 1권 '언와인드: 하비스트 캠프의 도망자', 2권 '언홀리: 무단이탈자의 묘지', 3권 '언솔드: 흩어진 조각들', 4권 '언디바이디드: 온전한 존재' 총 네 권으로 이뤄져 있다.

초반부는 원치 않는 죽음을 피해 가출하는 소년 코너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이후 언와인드라는 불합리하고 잔혹한 제도에 맞서는 코너의 투쟁기로 확장된다.

사고뭉치였던 코너는 그의 여정에서 여러 사건을 겪고 같은 처지의 청소년들을 만나며 차츰 책임감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성장해 정부에 맞서는 투사가 된다.

임신 중지를 허용할 것인지는 오랫동안 찬반이 엇갈리는 문제다.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는 임신 중지를 둘러싼 갈등 끝에 끔찍한 제도 '언와인드'가 탄생했다는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찬반 진영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지는 않는다.

다만 작가는 독자가 임신 중지 문제를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진지하고 중요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면서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닐 셔스터먼은 '챌린저 딥'으로 전미도서상을, '수확자'로 마이클 프린츠 상을 받은 SF 작가다. 미국에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출간된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는 미국 TV 시리즈 제작이 확정됐다.

강동혁 옮김. 1권 488쪽, 2권 592쪽, 3권 592쪽, 4권 568쪽.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