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미국의 국가부채가 36조 달러, 한화로 약 5경 2천조 원을 돌파하며 GDP 대비 120%를 넘어섰다. 한 해 이자만 1.2조 달러다. 이 막대한 부채는 단순한 재정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미국 경제가 지난 20년간 경험한 전쟁, 감세, 위기 대응, 그리고 복지 지출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며, 글로벌 금융 시장과 각국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거대한 부채를 안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과 정책 결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막대한 국방비가 지출되었다.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이 두 전쟁에 투입된 비용은 약 5조 5천억 달러에 이른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해 1조 달러가 넘는 경기 부양책과 은행 구제금융이 집행되었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5조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재정 투입이 이루어졌다. 팬데믹 대응을 위한 CARES법안만 해도 2조 달러가 넘는 돈이 투입되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연쇄적으로 추진된 감세 정책은 국가 재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감세법을 시작으로, 트럼프 정부의 2017년 감세 법안은 향후 수년간 세입 감소를 초래했다. 미국 의회 예산국(CBO)은 2001년부터 2011년 사이 감세 정책이 GDP 대비 부채 비율을 약 37%포인트 상승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사회보장제도와 의료보장 프로그램(Medicare, Medicaid) 등 자동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이 의무 지출은 연간 2조 5천억 달러에 이르며, 고령화와 의료비 상승으로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이러한 복지 및 이자 지급이 전체 연방 예산의 60% 이상을 차지하면서 재정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부채는 결국 금리 부담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2025년 현재 미국의 연간 이자 비용은 약 1조 2천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미국 국방비 지출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국채 금리는 2021년 1.3% 수준에서 최근 4.5%까지 급등했다. 특히 중국 등 해외 투자자의 국채 매도 움직임이 금리 상승을 부추겼다.
이러한 상황은 주요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으로도 이어졌다. S&P, Fitch, Moody’s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2021년 이후 각각 한 단계씩 낮추면서 정책 불확실성과 정치적 갈등이 신용 리스크를 키운다고 경고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 국채 매입 규모가 줄어들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조짐이 보인다. 2025년 1분기에는 약 1,500억 달러 규모의 국채 순매도가 발생해, 높은 금리와 부채 부담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반영되고 있다.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인 만큼 미국의 재정 상황 악화는 전 세계 금융 시장에 파장을 미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25년 3월 기준 한국 외환보유액 약 1조 달러 중 상당 부분이 미국 국채에 투자되어 있다. 미국의 금리 상승은 한국의 가계와 기업 대출 금리를 올리고, 환율 변동성도 키워 국내 경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국채의 매력도가 감소하면서 달러 유동성도 위축되는 모습이다. 이는 신흥국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자본 이탈과 금융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전문가들은 미국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크게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사회보장과 의료보장 등 자동지출의 점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현재 복지 지출과 이자 지급이 급증하고 있어 이를 GDP 성장률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방 예산도 효율화하여 낭비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둘째, 세입을 늘리는 정책이 절실하다.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세법을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내 상위 1% 소득자가 전체 소득의 20%를 차지하지만, 이들의 세금 부담은 상대적으로 낮아 세원 확장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셋째, 정치권의 협력과 정책의 예측 가능성 확보다. 의회와 행정부가 예산 및 부채 한도 문제에 대해 협력하고 합의를 이루어 정책 불확실성을 줄여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CBO는 현재 정책이 유지될 경우 30년 이내에 부채비율이 GDP 대비 200%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양당의 협력을 촉구한다.
올해 4월 미국 의회는 약 3.3조 달러 규모의 감세 및 재정 확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단기적으로 경기 부양 효과가 기대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채 증가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은행의 국채 보유 규제를 완화하고 제한적으로 채권 매입에 나서면서 시장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본격적인 양적 완화 재개에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재정 부담과 인플레이션 압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모습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국이다. 하지만 36조 달러가 넘는 국가부채와 GDP 대비 120%가 넘는 부채비율은 미국 경제의 신뢰와 안정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전쟁과 위기 대응, 연쇄적인 감세, 복지 지출 확대라는 복합적 요인이 재정 적자와 부채 급증을 불러왔고, 이는 금리 상승과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금융 시장 경고로 되돌아오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미국 재정 정책의 향방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위기는 미국 정치권이 책임 있는 재정 운영과 실질적인 협력을 통해 해결하지 않는 한 글로벌 경제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서 미국 경제의 미래와 글로벌 금융 안정성에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다. 책임감 있는 정책 실행과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이 위기는 새로운 성장과 안정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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