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씨가 완연해지면서 남해안의 숲도 서서히 푸르름이 짙어진다. 이맘때면 남쪽 섬지방의 습한 공기 속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다. 이름조차 낯선 ‘섬개야광나무’다.
이름만 들으면 보통 사람들은 잡풀로 여길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이 식물은 대한민국에서만 자라는 세계적 희귀종이다. 생김새는 소박하고 키도 작지만, 한반도 남해안 섬 지역에만 자생하며, 멸종위기종이자 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다.
섬개야광나무는 식물학계에선 오랫동안 연구 대상이 되어왔다. 남쪽 섬 숲속에서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 식물은 아직도 그 생태와 기능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남해안 섬에서만 자란다… '섬'이 붙은 이유
섬개야광나무는 장미목 마편초과의 낙엽관목이다. 키는 1~3m 정도 자라고, 연보라색 작은 꽃이 가지 끝에 산형으로 핀다. 개화 시기는 6월에서 7월 사이로 가을엔 검은빛 열매가 달리며, 주변 생물에게도 먹잇감이 된다.
이 식물이 자라는 지역은 전남 완도, 해남, 추자도, 거문도, 제주도 일부가 유일한 자생지다. 그래서 이름에 ‘섬’이 붙었다. 내륙에서는 자연 상태로 자라지 않으며, 인공 번식도 거의 성공하지 못한다. 온난하고 습윤한 기후, 염분이 섞인 해풍, 안정된 토양이 모두 갖춰져야 생존할 수 있다.
그 희귀성과 제한된 분포로 인해 섬개야광나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분류돼 있다. 일반인이 산이나 숲에서 이 식물을 채취하거나 이식할 때 자연공원법 및 산림보호법 위반으로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비슷해 보여도 다르다… 개야광나무와의 구분법
섬개야광나무는 이름만 보면 흔하게 자라는 ‘개야광나무’와 헷갈리기 쉽지만 두 식물은 외형과 생태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가장 먼저 잎을 보면 섬개야광나무는 뒷면에 털이 거의 없고, 잎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이다. 꽃차례는 짧고, 꽃송이도 더 작고 조밀하게 달린다. 개야광나무는 내륙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낙엽관목으로, 크기가 크고 꽃의 색도 좀 더 진한 보랏빛이다.
또한 생육지 자체가 다르다. 개야광나무는 전국적으로 자라지만, 섬개야광나무는 지정된 몇몇 섬 지역에서만 발견된다.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도 훨씬 약하다. 기후 변화, 인간 출입, 산책로 확장 등 외부 요인이 있으면 개체수가 급감한다.
자연교잡도 거의 확인되지 않아 유전자 보존의 가치가 크다. 현재 국립수목원이 일부 지역에서 유전자 보존을 위한 실험 재배를 진행 중이다.
사람에게도 의미 있는 나무… 생태계 유지의 핵심
섬개야광나무는 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꽃에는 벌과 나비가 모여들고, 열매는 새들의 먹이가 된다. 특히 꿀벌 유입을 촉진하는 꽃 구조로 인해 숲의 수분 활동에도 기여한다.
과거 남해안 섬마을에선 섬개야광나무를 풍장목이나 울타리 식재용으로 쓰기도 했다. 줄기가 단단하고 병충해에 강해 해풍이 강한 지역에서도 잘 견딘다. 그러나 현재는 보존 목적 외의 이용은 금지돼 있다.
한의학 고문헌 일부에서는 섬개야광나무를 목향 대용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항염, 해열,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을 줬다는 민간전승도 있으나 현대 임상 연구는 부족하다. 이 때문에 식용, 약용보다는 보존 우선 대상이다.
무엇보다 이 식물은 생태계의 보존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종으로 평가받는다. 섬개야광나무가 있다는 건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 생물다양성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야만 이 식물도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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