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간 일반인에게 완전히 닫혀 있던 한라산의 숨은 샘, '백록샘'이 지난 5일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샘'이라고 불리는 이 샘은 해발 1675m에 위치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는 이날 언론인과 연구자들에게 한정해 백록샘 탐방을 허가했다. 산행은 영실코스를 따라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오른 뒤, 돈내코 방향으로 약 15분 내려가 비탐방로를 통해 도보로 접근했다.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70년 이후 일반 대중에게 백록샘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라산 지하수가 솟아오른 '백록샘'
백록샘은 빗물이 고여 생긴 백록담과는 다른 방식의 샘이다. 화산암반층 사이로 흐른 지하수가 지표 위로 솟아나는 용천수, 즉 용출형 샘물이다.
백록샘은 현재까지 확인된 남한 내 최고 고도 샘으로, 한때 최고 고도 샘으로 알려졌던 방아샘은 현재 폐쇄된 상태다. 인근의 노루샘도 해발 1666m에 위치해 있어, 백록샘이 위치 면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졌다.
'백록샘'이라는 이름은 아직 공식 지명으로 등록된 명칭은 아니고, 산악인들이 부르던 호칭이 굳어진 것이다. '한라산의 지명' 등 문헌에 따르면, 이 샘은 '보습코지물', '붉은오름물'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보습코지물'은 주변 지형이 쟁기 보습처럼 돌출된 형태에서 유래했고, '붉은오름물'은 붉은 화산송이, 철쭉꽃, 털진달래 등에서 비롯됐다.
하루 평균 유수량은 약 210톤으로 알려졌고, 수위는 성인 허리 높이 정도에 달한다. 물줄기는 동홍천과 원앙폭포, 효돈천을 지나 서귀포 남원읍 앞바다까지 약 18km를 따라 흐른다.
이날 관찰된 샘물 깊이는 정강이 정도였지만, 가뭄이 극심했던 여름 장마철에도 수량은 풍부하게 유지됐다. 동행한 연구진들도 예상보다 풍부한 물줄기에 감탄을 표했다.
연구진과 언론은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손을 오래 담그기 어려웠고, 육안으로 봐도 매우 맑았다"고 밝혔다. 맑은 수질에서만 서식하는 소금쟁이류 곤충도 물 위를 떠다니는 모습이 관측됐다.
다만 이곳은 비탐방로 구역에 속해 수질검사가 정식으로 이뤄진 적은 없다. 이번 탐방에 동행한 김찬수 한라산생태연문화연구소장은 "과거 한라산이 목장으로 쓰이던 시절, 이 물을 생명수처럼 마셨다"며 "지금처럼 출입이 통제된 건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연구 가치 뛰어난 고지대 화산지형
이날 현장에서 해설을 맡은 김종갑 제주도 한라산연구부 과장은 백록샘의 가치에 대해 "화산지형 중에서도 해발이 높은 위치에서 샘물이 솟는 현상은 매우 드물며, 지질학적 연구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겉보기엔 작고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물 덕분에 고산 지역 생물들이 살아간다"고 덧붙이며 생태학적·경관적 중요성도 함께 강조했다.
1분 만에 마감된 신청… 출입 다시 제한
이번 탐방은 '제주 국가유산 방문의 해'를 맞아 특별 기획된 일정이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는 선착순 100명만 신청을 받았으나, 모집 시작 1분 만에 접수가 마감됐고 최종 신청 인원은 약 2600명에 달했다.
백록샘은 오는 24일까지 예약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개방되며, 그 이후에는 다시 출입이 금지된다. 다만, 같은 구역 내 구상나무 대표목은 기존 한라산 탐방로를 통해 계속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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