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서울과 광주의 여자대학교에 잇따라 폭발물 설치를 암시하는 협박성 이메일이 도착해 경찰이 캠퍼스 곳곳을 수색하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면 휴강 조치와 학생 대피가 이어지는 등 교내는 하루 동안 극도의 불안에 휩싸였다.
이메일 발신자가 자신을 ‘남성연대 회원’이라고 밝힌 데다 해당 학교들이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적극적이었던 점을 들어 경찰은 여성혐오 범죄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와 광주 광산구 광주여대 평생교육원에 지난 4일 저녁 “10㎏의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다. 오후 3시 34분에 터질 예정”이라는 이메일이 각각 전송됐다.
양 학교 측은 지난 7일 오후 12시 넘어 해당 메일 내용을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곧바로 출동해 학교 수색에 돌입했다. 양 학교 측은 수업을 전면 취소했고 학생들을 긴급 대피시켰다.
이날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 등은 성신여대 캠퍼스에 대해 4시간가량 수색작업을 펼쳤지만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오후 4시 45분께 현장 통제를 해제했다. 광주여대 평생교육원에서도 출입을 통제하고 약 6시간 동안 설치 여부를 파악했으나 역시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성신여대에 협박 메일이 들어온 것은 지난 4일 오후 11시 42분으로, 광주여대에 메일이 접수된 지 약 10분 뒤 메일이 발송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메일 발신자가 스스로를 ‘남성연대 회원’이라 소개한 것이 드러났다. 또 발신자는 폭탄을 설치했다는 내용과 함께 “여성은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등 극단적인 혐오 발언도 이어갔다.
남성연대는 2006년 故성재기씨가 설립한 남성인권운동 단체다. 이후 해당 단체명을 딴 ‘신남성연대’가 조직되기도 했다. 다만 메일 발신자가 실제 남성연대나 신남성연대와 연관 있는 인물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두 이메일의 내용이 유사해 동일인의 소행으로 보고 발신 위치를 추적 중이다. 또 두 학교 모두 학교 측의 일방적인 남녀공학 전환 등에 반발해 학내 시위를 벌인 전력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에 기반한 범죄일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성신여대 학생들은 국제학부에 남학생을 모집하는 것에 반대해 시위를 벌인 바 있다. 광주여대 학생들도 특정 수업에 남학생도 수강할 수 있도록 한 학칙 개정 추진에 반발해 시위를 전개했다. 이와 더불어 두 학교 학생들은 모두 지난해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반대 하는 움직임에 연대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성신여대 총학생회는 사건 당일 SNS에 학교를 향한 요구안을 게재했다. 이들은 “이번 사안은 학교가 학생의 안전 보장이라는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이는 단순한 행정 미비가 아닌 학생 안전에 대한 인식의 부재”라고 꼬집었다.
이에 학생들은 학교 측에 △교내 안전 대원 증원 △비상상황 통합 대응 매뉴얼 제정 및 공개 △외부인 출입 시 신원 파악 절차 강화 등을 촉구했다.
시민사회에서는 경찰이 ‘남성연대’와 범죄 피의자의 행위관련성을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사건 당일 논평을 내고 “가해자의 테러 위협은 협박만으로도 극심한 공포를 주며 불필요한 공권력을 사용하게 한다”며 “위협만으로도 가해자는 여성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폭력의 목적을 이룸과 동시에 자신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망상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발생한 폭행사건을 언급하며 “남성연대로 귀속되는 범죄 행위에 대해 경찰당국은 철저하게 관련성을 수사해야 한다”며 “범죄인이 자신이 소속된 조직이라 자처하는 ‘남성연대’와 범죄 피의자의 행위관련성을 밝히는 것은 향후에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혐오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중대한 수사 상의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신소영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표면적으로는 여성 혐오 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요소를 갖췄다. 이메일 협박의 대상이 된 성신여대와 광주여대는 모두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나섰던 학교들로, 범행 장소 자체가 범죄자의 시각에서 상징성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해당 학교들이 남녀 간 분리를 조장한 것으로 보고 이를 ‘먼저 공격한 행위’로 해석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더 나아가 여성에 대한 혐오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회적 이슈를 만들고 주목받고자 하는 욕구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기존 대학 캠퍼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앞으로는 대학 차원의 자체 비상 대응 매뉴얼과 유관기관 간 비상 연락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혐오 범죄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경찰 역시 전문 수사팀을 조직해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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