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금융감독원이 내부통제 책임구조에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 포함을 권고했지만, 미래에셋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핵심은 ‘누가 포함되느냐’보다 ‘어떤 기준으로 포함 여부를 판단할 것인가’에 있다. ‘실행권한이 없는 창업자까지 통제구조에 넣는다면 제도의 실효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와, ‘실질 통제자가 빠진 통제 체계는 공허하다’는 감독당국의 논리가 충돌한다.
◇금감원 “실질 권한 있다면 책임도 있다”
금감원은 이달 초 “미래에셋증권의 내부통제 책임구조(책무구조도)에 박현주 회장을 포함하라”고 구두 권고했다. 책무구조도는 리스크, 내부통제, 준법 책임을 임원별로 명시해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려는 제도다.
감독당국은 직함보다 실제 권한에 주목한다. ‘전략 수립과 투자 방향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인물이라면 창업자라도 책임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논리다. 형식적 퇴진이나 상징적 직함 뒤에 실질 권한이 숨는 구조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의지다.
◇미래에셋 “경영 관여 없어…책임 확장은 법 위반”
미래에셋은 “박 회장은 국내 사업에 개입하지 않으며, 해외 전략 자문 역할만 맡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계열사 경영은 각 대표이사와 이사회가 담당하고, 내부통제 역시 전문경영인 체제 아래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 해석도 문제 삼았다. ‘현행법에 실질 책임자 개념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문 역할에 그치는 인물까지 포함시키면 경영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전략적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상근 고문이나 상징적 인물까지 포함시키는 건, 책무구조도를 실질 통제 장치가 아닌 정치적 장치로 전락시킨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준은 ‘실행자 중심’…창업자는 책임 제외
국제 금융당국은 내부통제 책임자를 지정할 때 ‘실행권한’ 보유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은 CEO, COO, CRO 등 실무 책임자에게 내부통제 책임을 부여하고, 창업자나 명예회장은 책임 구조에서 제외한다.
예컨대 블랙록과 골드만삭스 같은 글로벌 운용사에서도 설립자는 의사결정에서 손을 뗀 이후 내부통제 책임 대상에서 빠진다. 실행과 통제를 분리하고, 형식보다 기능 중심의 책임구조를 정립한 결과다.
반면 한국은 고문이나 창업자까지 포함하는 방식으로 책무구조도를 설계하려 한다. 이 경우 국제 기준과의 괴리가 커지고, 제도의 예측 가능성도 떨어질 수 있다.
◇책임 확장은 통제 약화로 이어진다
금감원의 취지는 명확하다. ‘실질 통제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통제 체계는 형식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하지만 기준 없이 대상을 확장하면 제도의 실효성 자체가 흔들린다.
책임은 권한에서 나온다. 실제로 국내 경영 라인에 참여하지 않고, 실행 권한이 없는 창업자를 포함시키면 오히려 책임 주체가 모호해진다. 내부통제 강화책이 통제를 불명확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미래에셋 측은 “박 회장이 국내 회의나 내부통제 절차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며, 전략 자문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 ‘국내 사업은 전문경영인이 운영하고 있어 실행과 전략은 구조적으로 분리돼 있다’는 논리다.
반면 금감원은 국내외 전략과 자금 흐름의 연결성을 들어 창업자의 실질적 영향력을 주목한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일리가 있지만, 연결 고리를 이유로 형식적 책임까지 부과하는 건 과도한 확장이라는 반론도 있다.
◇기준이 없으면 제도는 흔들린다
이번 논란은 특정 인물의 포함 여부를 넘어, 금융 지배구조에서 책임 기준을 어떻게 정립할지를 가늠하는 계기다. 제도는 ‘누구를 겨냥할지’가 아니라 ‘어디에 기준을 둘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기준 없는 책임 확대는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해치고, 통제 체계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결국 감독의 신뢰와 경영의 안정성을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책무구조도의 방향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 제도적 목적을 실현하려면, ‘누가 대상이냐’보다 ‘그를 포함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냐’를 명확히 해야 한다. 책임은 상징이 아니라 권한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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