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한스경제 류정호 기자]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을 1년여 앞두고,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옥석 가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7일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개막전에서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3-0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이동경(김천), 주민규(대전), 김주성(서울)이 연달아 골망을 흔들고 총 6명이 A매치 데뷔를 이루는 등 세대교체의 가능성을 알린 경기였다.
하지만 화끈한 승리와는 달리, 경기장의 분위기는 차가웠다. 이날 공식 집계된 관중 수는 4426명에 그쳤다. 약 3만7000석 규모의 미르스타디움은 대부분 텅 비었고, 중앙 하단의 가장 좋은 좌석마저 쉽게 빈자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팀의 홈 경기, 그것도 A매치로 분류되는 국가대항전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인 수치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대회의 특성상 유럽파 차출이 불가능하다. 이번 대회는 FIFA A매치 캘린더에 포함되지 않아 유럽과 중동 등지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등 팬층이 두터운 슈퍼스타들이 빠진 대표팀은 K리그 선수 23명, 일본 J리거 3명 등 ‘국내파’ 위주로 구성됐다. 실험의 무대라는 의미는 분명하지만, 관중 입장에선 ‘보고 싶은 얼굴이 없다’는 실망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장소 문제도 컸다. 미르스타디움은 2018년 개장 당시 약 3218억원이 투입된 최신식 경기장이다. 하지만 그간 활용도가 떨어져 ‘유령 경기장’이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2024년 수원월드컵경기장 공사로 인해 프로축구 K리그2(2부) 수원 삼성이 잠시 홈으로 사용하며 시험대에 올랐다. 하지만 교통 인프라 부족, 협소한 주차 공간, 접근성 문제로 대형 이벤트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역시 험난한 경기장 방문을 감수할 각오를 한 팬들만이 현장을 찾았다.
폭염과 습도도 걸림돌이었다. 체감온도 섭씨 33도, 습도 85%에 달하는 환경은 관중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야간 경기였지만, 경기장은 거대한 찜질방 같았다. 가벼운 옷차림의 팬들조차 선수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일정 또한 악재였다. 개막전은 월요일에 열렸다.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모두 불리한 시간대다. 오는 11일 열리는 홍콩전은 금요일이지만, ‘결승전’ 격인 일본전은 또다시 화요일로 잡혀 있다. 흥행 면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일정이다.
대회 자체의 매력도 떨어진다. EAFF E-1 챔피언십은 2003년 시작된 동아시아 지역 격년제 대회로, 한국은 현재까지 5회 우승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대회의 위상은 뚜렷하게 하락세다. 2022년 일본에서 열린 대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겪어 한국-중국전에 고작 214명이 입장, 흥행 참패를 겪었다. 일본, 중국, 홍콩 등 주요 참가국 모두 유럽파 없이 2진 위주의 선수단을 꾸리고 있다 보니 팬들의 관심도 식었다.
지난해 9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쿠웨이트전에는 약 4만 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손흥민과 이강인이 출전한 경기였다. 스타 선수의 존재가 관중 동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수치로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팬들에겐 국가대표 경기가 아닌 듯한 낯선 A매치로 남을지도 모른다. 동아시안컵의 흥행 부진은 단순한 인기 문제를 넘어, 대회 존속 여부에 대한 논의로도 이어질 수 있다. EAFF와 각국 축구협회가 이 대회의 존속 여부나 운영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에 나설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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