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선수들의 이명(異名)에 관하여, 낭만주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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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선수들의 이명(異名)에 관하여, 낭만주의 편

시보드 2025-07-06 00:54: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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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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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는 조용하고 정적인 게임이라고 평가받지만, 그 안에는 특이한 별명이 붙을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던 선수들이 있었다.

수백 년 전부터 체스판을 지배했던 선수들은 단지 이름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존재감으로 기억되곤 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들을 또 다른 이름, 이명(異名)으로 불렀다.


이명은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이자 철학이었고,

그들이 체스판 위에서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살아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그렇게 이름을 넘어 전설이 된 선수들.

지금부터 그들을 하나씩 만나보자.



1. "파리의 호랑이" 루이 샤를 마헤 드 라 부르도네 (1795-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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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선수가 아니라 무슨 혁명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긴 이름.

하지만 그 이름 뒤엔 19세기 초 프랑스 체스의 자존심이자 사실상의 당대 세계 챔피언으로 군림했던 사나이가 있었다.


그 사나이의 이명은 "파리의 호랑이".

당시 세계 체스의 중심은 누가 뭐라 해도 파리의 체스 카페들이었으며, 부르도네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의 공격은 예술이었고, 희생은 전략이었으며, 상대를 몰아붙이는 플레이는 마치 호랑이를 연상시켜 이런 이명이 붙었다.


물론 당연히 프랑스에게 지고 못사는 한 나라도 자신들도 프랑스 못지 않다는걸 증명하기 위해 파리의 호랑이의 대항마를 내세우는데...



2. "런던의 검객" 알렉산더 맥도넬 (1798-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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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호랑이'에 대적할 수 있던 영국의 자존심, 왠지 모르게 오프닝 이름들에서 가끔씩 보이던 바로 그 맥도넬이다.


프랑스가 야성을 바탕으로 한 호랑이를 내세웠다면, 영국은 정제된 기술과 절제된 수읽기로 맞섰다.

그는 격렬한 공격보다는 정확한 타이밍에 베어내는 검술 같은 체스를 구사했고, 그런 스타일은 자연스레 그에게 "런던의 검객"이라는 이명을 붙여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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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런던 체스클럽의 대표로서 당대 최강이라 평가받던 라 부르도네와 1834년에 4개월간 무려 85국(!!) 이나 되는 경기를 진행하였는데, 안타깝게도 27승 13무 45패로 검이 꺾이고 만다.

심지어는 고질적인 만성 신장병때문에 부르도네와의 대국이 종료되고 1년도 되지 않아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이 둘의 스토리는 여러모로 흥미롭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이에 관한건 나중에 시간이날때 써보도록 하겠다.



2.5. "영국의 영웅" 하워드 스턴튼 (1810-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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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넬과 부르도네의 치열한 대결 이후, 영국 체스계는 또 다른 거목을 배출하게 된다.

그에게 널리 통용되던 특별한 이명이 붙진 않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영국의 영웅"이라 불리기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부르도네 사후 1843년, 프랑스 챔피언이라 불리우던 '피에르 샤를 푸르니에 드 생아망'을 11승 4무 6패라는 압도적인 기록으로 패퇴시켰고,

유럽 전역에서 인정받는 사실상의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갔다.


또한 1851년, 그는 런던에서 세계 체스 토너먼트를 성공적으로 개최시켜 프랑스가 쥐고있던 세계 체스의 주도권을 런던으로 돌려놓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오늘날까지 체스의 표준이 된 스턴튼 체스세트를 만들었고, 체스 이론들을 정리하며 체스를 대중과 역사 속으로 끌어올린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3. "브레슬라우의 사자" 아돌프 안데르센 (1818-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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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모탈 게임, 에버그린 게임으로 기억되는 낭만주의 체스의 정점. 안데르센이다.


사실 그는 1851년 런던 토너먼트 이전까지 체스 퍼즐이나 만들면서 지내던 독일 변방의 수학 교사였다.

하지만, 그는 런던 토너먼트 4강에서 명실상부 당대 최강이라 평가받던 영국의 영웅, 하워드 스턴튼을 4승 1패로 압살하게 된다.

그 순간, 변방의 교사는 단숨에 유럽 체스의 최강자로 떠올랐고, 이제 사람들은 그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브레슬라우의 사자".

그 이명은 단순히 그의 강한 체스 실력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기물을 희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불리한 듯 보이는 포지션에서도 당당히 전진했다.


그의 체스는 조심스럽게 싸우는 체스가 아니라, 사자처럼 포효하며 밀어붙이는 체스였다.

그런 기세와 용기, 그리고 예술로 승화되는 희생들 덕분에 사람들은 그의 고향의 이름을 따서 그를 "브레슬라우의 사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별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 바로,

바로 그 유명한 임모탈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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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런던 토너먼트 중간 휴식시간에 그가 보여준 이 대국은, 말 그대로 체스 역사에 남아 '불멸'이 되었다.


퀸과 룩 모두를 기꺼이 희생한 후, 우아한 수들로 상대를 무너뜨린 단 한 판.

그 한 판은 지금까지도 '체스의 예술'을 말할때 반드시 등장한다.



4. "체스의 천재" 폴 모피 (1837-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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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꾸밈도 필요 없는 이명, "체스의 천재".

그는 정말 말 그대로 천재였다.


1857년, 뉴올리언스 출신의 시골 청년이었던 모피는,

스무 살에 법학 학위를 마치고 변호사 자격증을 기다리다가 그저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지인의 권유를 받아 뉴욕 체스 토너먼트에 나가게 된다.

그 대회는 다름 아닌 미국 챔피언 결정전.

모피는 당시 미국 최강자였던 루이스 폴슨을 5승 2무 1패로 꺾고 단숨에 미국 챔피언에 오른다.


그는 챔피언 결정전 외에도 뉴욕에서 두 달간 머물며 100경기 가까운 대국을 소화했는데,

그 전적은 무려 87승 8무 5패.

심심풀이 치곤 조금... 아니, 많이 강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모피는 변호사를 준비하다 당대 최강자 중 한 명이었던 스턴튼에게 도전장을 보낸다.

하지만 이미 늙고 병들었던 스턴튼은 이런 신예의 도전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바빠서 미국은 못가고 정말 하고싶으면 너가 여기로 와라. 대신 와도 바빠서 확답은 못한다" 라며 에둘러 거절하는 답장을 보낸다.


그런데...

뉴올리언스에서 평생을 자란 시골 청년이었던 모피는 그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다.

"아, 그러니까 내가 직접 가면 대국을 해준다고?"

그래서 그는 정말로 1858년, 유럽으로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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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튼은 왠 미치광이가 체스 하나 두겠다고 대서양을 횡단한 것에 매우 기겁하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대국을 계속 피했고,

기다리다 지친 모피는 심심풀이 삼아 유럽 체스 고수들과의 대국을 시작한다.


그리고 모피는 유럽 체스를 초토화시켰다.


모피는 1년간의 짧은 유럽 투어 기간동안 공식 대국 전적 30승 2무 9패를 기록한다.

특히 당대 유럽 최강자였던 안데르센과의 대결에서는 7승 2무 2패라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남기게 되며 초신성의 등장을 전 유럽에 알리게 된다.

참고로 안데르센은 이 대국에서 모피를 상대하기 위해 1. a3라는 실험적인 수를 선보였는데, 이 오프닝은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따 '안데르센 오프닝' 이라고 불리게 된다.

안데르센이 공격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면, 모피는 그 공격을 더 빠르고, 더 간결하게, 더 정확하게 완성해낸 천재였다.


그렇게 홀연히 나타나 유럽의 강자들을 모두 박살낸 모피는 마치 신기루처럼,

"이건 내 본업이 아닌데요?" 라고 말하며 체스계를 떠나버렸다.


"체스를 둘 줄 아는건 신사의 소양이지만, 체스를 잘 두는건 인생의 낭비이다" - 폴 모피


놀랍게도 그는 훌륭한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 체스 챔피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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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체스는 예술과 낭만, 그리고 이름을 넘어선 전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아직 시작일 뿐,

다음 편에서는 낭만이 논리로 바뀌고, 감각이 과학으로 진화하는 그 다음 시대의 전설들을 만나보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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