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우리에게는 유리병 오렌지 주스로 유명한 ‘델몬트(Del Monte)’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믿고 먹는 통조림의 대명사로 통했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 군것질 거리이자 간편한 식사 대안이었던 델몬트는 이제 '파산보호 신청'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과 함께 언론의 헤드라인에 오르고 있다.
1886년 설립된 델몬트 푸드는 139년간 미국 가정의 부엌 한켠을 지켜온 기업이다. 하지만 지금은 법원 감독 아래 매각 절차를 시작하며 생존을 위한 칼을 빼들었다. 재정적 위기는 더 이상 숨기기 어려운 현실이었고, 회사 스스로도 “법정관리형 매각이 가장 효과적인 회생 방안”이라고 인정했다.
회사는 현재 9억 1250만 달러(약 1조 2500억 원)의 채무자 인수금융(DIP Financing) 을 확보한 상태로, 정상적인 영업은 지속된다. 하지만 그들이 확보한 자금은 버티기 위한 유예일 뿐, 시장에서 델몬트가 직면한 현실은 이미 너무나 냉혹하다.
델몬트의 추락은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다. 이른바 ‘소비자 혁명’이 만든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방부제가 많다”, “신선하지 않다”, “건강에 안 좋다”… 통조림 식품에 대한 오랜 편견과 인식이 세대교체와 함께 점점 뚜렷해졌다. 게다가 식재료 자체를 사서 요리하는 문화도 줄고, 밀키트나 배달 음식이 일상화되면서 델몬트가 들어설 틈은 점점 사라졌다.
시장 조사기관에 따르면, 델몬트의 대표 통조림 제품은 점점 소비자 장바구니에서 밀려나고 있다. 반면, 비교적 최근 출시한 ‘Joyba’라는 버블티 제품과 육수 브랜드 ‘Kitchen Basics’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장은 거대한 매출 감소의 ‘반의 반’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소비자 이탈만이 아니다. 공급망과 원자재 이슈도 결정타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과한 철강 수입 관세(50%)는 통조림 캔 원가에 영향을 주었고, 물가 상승은 소비자들을 더 싼 PB(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내몰았다. 여기에 지난해 일부 대출기관과 벌였던 소송까지 겹치면서, 델몬트는 복합적 압박을 받았다. 결국,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통조림 제국’도 무너졌다.
델몬트는 싱가포르의 ‘델몬트 퍼시픽’이 소유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이번 파산은 미국 법인에 국한된 조치다. 아시아·중동·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여전히 사업이 유지되고 있지만, 미국 시장은 더 이상 ‘통조림의 나라’가 아니다. ‘웰빙’이라는 거대한 소비 트렌드는 맛과 편리함조차 밀어냈다.
델몬트의 파산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의 몰락을 뜻하지 않는다. 식품업계는 이번 사태를 전통 식품산업의 ‘구조적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소비 트렌드 변화와 비용 구조 개편 없이는 유사 브랜드의 추가 파산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139년의 유산도, 잘 만든 통조림도, 변화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식품업계에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델몬트는 그 질문을 너무 늦게 던졌는지도 모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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