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이슬 기자】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둘러싼 입법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이 연방 차원의 첫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을 통과시키며 글로벌 기준을 선점한 가운데 한국도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발행 주체, 기술 요건, 준비금 기준 등 핵심 요소는 빠져 있어 실효성을 담보하긴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은 ‘지니어스 액트(이하 지니어스법)’를 통과시켰다. 찬성 68표, 반대 30표로 가결된 이 법안은 현재 하원 표결과 대통령 서명만 남겨둔 상태다. 연방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처음으로 규율한 법안으로, 시장에선 “가상자산 산업에 중대한 이정표”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연방 승인 기관으로 한정하고,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 기술 사용을 전제로 한다. 빅테크 기업의 직접 발행은 금지했다. 또 준비금 자산은 93일 이하 만기의 미국 국채 등 안정성 자산으로 제한하고, 은행 수신 기능 약화를 우려해 이자 지급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는 테라·루나 사태 이후 제기된 규제 공백 문제를 해결하고, 기관별 상이한 해석에 따른 시장 혼선을 정리하기 위한 단일 규제 체계다.
한국도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달 10일,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에 대한 사전 인가제 도입, 디지털자산업의 정의 및 감독체계,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설치 등 제도적 기반을 담았다. 발행 요건 역시 기존 50억원에서 5억원으로 완화돼 민간 기업의 진입 문턱이 낮아졌다.
전문가, 입법 방향은 공감...“실행 뒷받침할 설계 부족”
업계는 해당 법안에 대해 “방향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실효성 확보를 위한 설계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민 의원안에는 ▲퍼블릭 블록체인 사용 여부 ▲준비금 자산 요건 ▲비금융사 발행 허용 여부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반면 지니어스법은 이 같은 핵심 기준을 조문에 명확히 담아, 제도에 대한 신뢰와 시장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NH투자증권 홍성욱 연구원은 “현재 발의된 국내 법안만으로는 실질적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이뤄지기 어렵다”며 “법안 보완 또는 추가적인 법안 발의가 필요해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달 안에 민주당 강준현 의원 등이 준비 중인 ‘디지털자산 시장의 혁신과 성장에 관한 법률(이하 혁신법)’도 발의될 예정이다. 혁신법 초안에는 민 의원 발의안에 없는 내용이 담겼다. 자기자본 요건을 10억원으로 상향하는 대신, 매월 1회 이상 자체 감사보고서와 연 1회 외부감사보고서 공시를 의무화하는 회계 투명성 조항이 포함됐다. 국내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은 물론, 원화에 연동된 해외 스테이블코인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 관계자는 “핀테크사들은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더불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며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누구나 발행과 유통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대신 준비금 안정성 기준은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법 접근 방식을 둘러싸고도 시각차가 존재한다. 구체적인 기준을 입법 단계에서 모두 명시하기보단 시행령 등 하위 규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원은석 이사장은 “시작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선 최소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 등을 통해 보완하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이라며 “네거티브 규제 원칙에 기반한 접근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현재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시장 기대치는 높은데 반해 발행 주체부터가 불명확한 상황”이라며 “발행, 유통, 보관, 결제 등 전반적 사항을 포괄하는 구체적인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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