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K-콘텐츠는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요즘 K-엔터 업계에서 조심스럽게 회자된다.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 자본이 K-엔터의 핵심 지분을 차지하며 조용히, 그러나 본질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중국의 텐센트뮤직은 하이브가 보유하고 있던 SM엔터 지분 약 9.4%를 인수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동시에 SM은 텐센트와의 전략적 협력 MOU를 체결했다. K-콘텐츠가 다시 중국 시장에 진출할 ‘길이 열렸다’는 기대감에, 주가는 올랐고 시장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환호 속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 '문화 주권'과 '글로벌 자본' 사이의 균열
엔터테인먼트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의 집합체이자 정체성의 표현이며, ‘소프트 파워’의 첨병이다. 따라서 그 콘텐츠의 지배 구조가 바뀐다는 건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SM을 비롯해 국내 주요 기획사들이 텐센트뮤직의 지분 투자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로써 중국 자본은 단지 ‘팬으로서의 소비자’가 아닌, ‘주인으로서의 투자자’로 포지셔닝을 바꿨다.
그것은 곧 “무엇을 만들 것인가”, “누구를 겨냥할 것인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콘텐츠 기획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다. 이미 업계 내부에서는 “중국 검열을 고려한 가이드라인”이 은밀히 작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엔터산업의 글로벌화는 분명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K-엔터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K-엔터가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한 퍼포먼스나 자본력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고유의 창작 방식과 표현의 자유, 한국적인 정서가 만들어낸 매력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 자본이 ‘가성비’와 ‘시장성’만을 기준으로 결정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우리는 결국 한국의 얼굴을 한 '중국형 콘텐츠'를 양산하는 구조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 자본은 앞으로도 더 많이 유입될 것이다. 한국 엔터 기업은 글로벌 확장을 위한 동력이 필요하고, 중국은 K-콘텐츠를 내수화해 자국 플랫폼의 흥행 동력으로 삼으려 한다. 이익은 분명 상호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경계선이 필요하다. 문화 주권은 ‘누가 콘텐츠를 만들고, 결정하고, 책임지는가’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K-엔터를 세계에 수출하면서, 동시에 그 핵심 결정권을 외부에 양도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문화적 독립’이 무너질 때, 수출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단지 이름만 남은, '한류의 껍데기'가 세계를 돌게 될 뿐이다.
■ “자본은 전략이 될 수 있지만, 기준 없는 수용은 리스크다”
하지만 중국 자본의 K-엔터 침투를 비판적으로만 바라보기엔, 오늘날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구조 자체가 다국적 자본 혼합 모델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콘텐츠 시장 전반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자본의 정치화’ 현상이다.
넷플릭스는 미국 자본이 주도하지만, 글로벌 콘텐츠를 대거 투자 및 유통하며 로컬 창작자 중심의 제작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에 대응해 “유럽 제작비 30% 이상 투자 의무화” 조항을 부과했고, 넷플릭스는 이를 수용하면서도 프랑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세계적 히트를 기록하는 전략을 취했다.
즉, 글로벌 자본과 로컬 창작의 공존 모델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반례(反例)도 존재한다. 최근 중동 국부펀드(PIF)는 헐리우드의 주요 스튜디오, e스포츠, 게임회사들에 거액을 투자하며 엔터 산업의 새로운 큰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보수적 가치관의 개입, 콘텐츠 검열, 인권 침해 관련 우려가 고조되면서 "자본은 있지만 표현은 사라진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는 자본 유입이 문화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경우 어떤 긴장 상황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경고 신호다.
중국 자본은 자금력, 시장력 모두 막강하지만, 정치적 통제성과 문화 검열 시스템이라는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한국 콘텐츠 산업은 외국 자본의 지분 한도 및 경영 관여 제한 규정, 콘텐츠 표현 자유 및 창작권 보장에 대한 명확한 원칙, 플랫폼 독립성 확보 및 수직계열화 견제 장치 마련 등을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 없이 유입되는 자본은 투자가 아니라 침투이며, 협력이 아니라 의존으로 귀결된다.
해외 자본의 유입은 현실이며, 이를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투자를 받더라도 주권은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다.
오늘날 콘텐츠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자본’과 ‘정체성’ 사이의 줄타기에 놓여 있다. 글로벌화가 필수인 시대지만, 문화는 여전히 ‘누가 만들고, 누구를 위해 만드는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지금은 성장의 시기이자, 동시에 정체성의 시험대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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