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임준혁 기자] 국제해사기구(IMO)와 미국, 유럽연합(EU)에서 저마다 발표하는 해운업계의 탈탄소화, 친환경 연료 사용 등과 관련된 각종 규제에 국내 중소 선사들이 사실상 발을 맞추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자금력과 조직 규모에서 대형 선사에 비해 열세에 있는 중소 선사들은 규제는 강화되는 반면 이를 이행할 구체적 기준과 지원 체계는 부족해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져 나온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한-중, 한-일, 동남아항로를 주로 운항하는 중소 선사들은 최근 신조선 발주를 위한 자금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에 따른 신조선가 상승세와 조선소 야드 확보도 대형 선사 중심의 치열한 경쟁 속에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대형 선사들은 비교적 탄탄한 재무 구조를 바탕으로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지만 중소 선사들은 조선소와의 계약 이전에 금융기관의 문턱도 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중연료 추진 방식 등 친환경 기술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기술적 불확실성과 연료 공급 인프라 부족으로 회사 차원에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지난 4월 IMO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Mid-Term Measure)를 승인했다.
이날 승인된 중기조치 규제안에 따르면 총톤수 5000톤 이상 국제 항해를 하는 선박은 2027년 상반기부터 선박 연료유의 강화된 온실가스 집약도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운항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례한 비용을 납부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항로별, 선종별로 세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업계의 혼란은 계속되는 분위기다. 탄소 감축이라는 글로벌 해사기구와 EU 등의 요구는 분명해졌지만 이행 수단과 적용 범위가 뒷받침되지 않아 일부 선사는 막대한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중소 선사일수록 이러한 불확실성은 곧 경영 리스크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 선사들의 탈탄소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중소 선사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설비 투자, 현재 운항 중인 선박의 개조, 대체 연료 도입, 배출 감축 기술 적용 등 모든 과정에서 높은 비용이 수반되는 만큼 이를 감당하기 위한 금융·세제 지원이 절실하다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한국해운협회의 ‘2025년 사장단 연찬회’에서도 이러한 중소 선사의 어려움은 여실히 드러났다. 참석자들은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국제 규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현실적인 정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단순한 규제 중심의 정책이 아닌 산업 현실을 반영한 입체적이고 균형 잡힌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 선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맞춤형 금융 지원과 기술 투자 유도, 인력 양성 체계 구축 등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무엇보다 대형 선사와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해운과 조선, 금융업계는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에 따른 국적 선사의 선박 확보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상생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일례로 공동 발주 태스크포스(TF) 구성과 친환경 기술 개발 지원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으며 민관 협업을 통한 지속 가능한 생태계 구축도 조금씩 추진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선급(KR)은 3년 전부터 주요 선사들과 비용 맞춤형 탈탄소 전략 수립 서비스 용역계약을 체결해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다수 고객사(선사)의 요청으로 이 서비스가 적기 대응이 곤란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음을 발견했고 선사가 직접 이용할 수 있는 솔루션 개발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파일럿(PILOT)’과 ‘파워(POWER)’란 솔루션 2개를 개발 완료한 KR은 선사별 맞춤형 탈탄소 전략 수립 플랫폼을 소개했다.
먼저 파일럿은 선사 주도의 전략 수립 플랫폼이다. 보유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IMO의 규제 비용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선사 입장에서 선대 운용 및 선대 전체에 대한 탄소배출 감축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파워는 AIS 기반 위치 데이터와 해상 환경정보를 결합한 선박의 운항 상태분석 플랫폼이다. 선박의 항적은 물론 항해상태, 속도, 흘수의 통계를 확인하고 최대 3척까지 비교 가능한 운항특성을 분석할 수 있다.
또 누적된 운항데이터 분석 등을 통한 사용자(선사) 맞춤형 플랫폼으로 데이터나 분석 내용을 시각화함으로써 선사 일선 담당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KR 관계자는 “지난달 출시된 파워는 현재 무료로 서비스되고 있다”면서 “성능 분석 프로그램인 만큼 6개월 간 시범 운영 후 유료화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중소 선사 관계자는 “친환경 관련 사업에 투입할 자금이 매우 한정적인 중소 선사들을 고려해 KR이 파워의 유료화 전환을 일정 기간 정도 유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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