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삼성전자가 단순 칩 제조를 넘어 차량 반도체 시장에서 ‘전장 시스템 설계’ 중심으로 행보를 넓히고 있다. Exynos Auto 시리즈에 이어 5나노 기반 통합형 단일 칩 체제(SoC)로 차량 내 연산·통신·보안·센서 기능을 하나의 구조로 묶어 완성차 업계에 새로운 설계 주도 전략을 제시했다.
시장조사업체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24년 약 720억달러 규모로 추산되며 2032년까지 12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주행과 전기차 확산으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과 통합 제어 유닛 수요가 증가하며 고집적 SoC의 채택이 확대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소수 전문 기업이 점유율을 주도하고, 안정적 공급을 위한 장기 계약 기반의 과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트에는 인피니언, NXP,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르네사스 등 상위 5개 기업이 2023년 기준 전체 시장 절반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은 아날로그 및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 및 자율주행 기술 확산으로 고성능 연산 수요가 확대되면서 일부 아날로그 중심 업체들은 기술 전환에 직면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환경 변화 속에 삼성전자의 수직 계열 구조와 고성능 SoC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분석한다.
글로벌 경쟁사들도 차량용 반도체 설계 영향력 확대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엔비디아는 DRIVE AGX 플랫폼으로 고성능 연산을 제공, 테슬라는 독자적인 FSD(HW3·4) 칩을 통해 차량 내 기능을 자체 설계한다.
퀄컴은 스냅드래곤 라이드, 인텔 자회사 모빌아이는 카메라 기반 ADAS 칩으로 시장 확대를 추진 중이다. 다만, 대부분 기업은 외부 파운드리나 메모리, 보안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수직 통합 구조를 갖춘 삼성전자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파운드리, 통신 모뎀, 보안 IP, AI NPU 기술을 아우르는 수직 계열 패키지를 바탕으로 시스템 설계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인피니언이나 NXP와의 협업도 단순 공급 계약이 아닌 제품 기획 초기부터 설계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공동 구조 설계 방식으로 이뤄지는 중이다.
지난해에는 차량용 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북미와 독일 뮌헨 등 유럽에서 관련 인재 채용을 확대, 연구개발(R&D)과 현지 영업 조직 영업 조직을 재편했다.
최근에는 유럽 완성차 업체들과 차량용 SoC 공급 및 공동 기획 논의를 병행해 고성능 SoC를 전장 시스템 설계 기준으로 제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플랫폼 설계 초기 단계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2015년 차량용 메모리 시장 진출한 삼성전자는 이미지센서,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영역으로 확장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퀄컴의 차량용 플랫폼 ‘스냅드래곤 디지털 섀시’에 탑재되는 LPDDR4X 차량용 메모리의 인증을 획득하며 본격적인 공급을 시작했다.
해당 제품은 영하 40도부터 영상 105도까지 작동 가능한 고신뢰성 메모리로 차량용 부품 신뢰성 기준인 AEC-Q100을 충족한다. 이러한 품질 특성은 향후 연산과 저장 기능의 통합을 추진하는 SoC 설계 전략에서도 핵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차량용 SoC는 일단 채택되면 수년간 차량의 기능·업데이트·통신 규약을 사실상 고정하는 설계 중심축이 된다. 업계는 이 같은 구조적 특성에 주목해 삼성전자가 단순 공급을 넘어 ‘설계 고정권’ 확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설계 권한이 기술력보다 중요한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관측도 이어진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는 누가 만들었느냐보다 어떤 구조로 설계됐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장”이라며 “설계가 한 번 채택되면 칩은 단가보다 구조 고정력에서 경쟁 우위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차량이라는 공간의 뇌를 먼저 설계해 진입 후 업그레이드, 보안, 데이터까지 관여하는 구조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대외 변수에도 영향을 받는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메모리 분야에서 2025년까지 글로벌 1위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예고된 고율 관세 정책이 다시 부상하며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유럽과 중국을 중심으로 부품 수급과 수요 예측 변동성이 확대돼 수요 단기 조정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런 외부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성능 SoC를 중심으로 한 설계 주도권을 고도화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자율주행 단계별 AI 반도체부터 전력반도체, MCU까지 고객 요구에 맞춰 적기에 양산할 계획”이라고 강조, 이를 통해 시스템 설계 및 생산 단계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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