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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홍콩 정부가 동성 커플에게 의료 결정 및 사망 이후 절차를 포함한 일부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동성 파트너십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첫 공식 조치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최근 입법회(한국의 국회격)에 제출한 제안서에서, 해외에서 법적으로 결혼하거나 파트너 등록을 마친 동성 커플에 대해 △의료 행위 동의 △사망 이후의 행정 처리 등 일부 권리를 인정하는 방안을 밝혔다.
제안서에 따르면, 향후 법제화가 완료되면 동성 커플은 배우자처럼 병원에서 치료 결정에 참여하거나, 파트너 사망 시 장례 및 유산 처리 등 사후 절차를 담당할 수 있다. 동성 파트너가 의식불명으로 수술을 해야 하거나 생명유지 장치를 중단해야 할 때, 다른 파트너가 이를 결정할 수 있는 ‘배우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단, 법적 인정을 위해서는 커플 중 최소 한 명이 홍콩 거주자여야 하며, 먼저 커플이 홍콩 외 지역에서 법적 결혼, 파트너십, 혹은 기타 형태의 경합을 등록해야 한다. 홍콩 내에서는 동성 결혼 또는 파트너 등록이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번 제안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의미 있는 첫 걸음이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다. 홍콩 결혼평등 공동창립자인 제롬 야우는 “해외에서만 등록을 인정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불공정하다”며 “현지 커플에게도 직접 등록 경로가 제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홍콩 중문대학의 최근 조사에서는, 안정적인 동성 관계를 유지하는 시민 중 70%가 결혼을 원한다고 답했다. 또 이들의 부모 역시 과반수가 동성 결혼의 법적 인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제도는 민주화 시위 참여로 수감 중인 지미 샴이 제기한 소송에서 비롯됐다. 샴은 뉴욕에서 합법적으로 결혼한 자신의 동성 배우자와의 관계를 홍콩에서도 인정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홍콩 최고법원은 2023년, 홍콩 내 동성 결혼은 불인정하되 정부가 대체 법적 프레임워크를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홍콩 정부는 “사회 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며 “사회적 조화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균형 잡힌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조치가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의 홍콩의 위상 회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다양성과 포용성 정책을 중시하는 만큼, 동성 파트너에 대한 제도적 인정은 외국 인재 유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홍콩은 2019년 민주화 시위 이후와 3년에 걸친 코로나 격리 정책 등으로 자본과 인력 유출을 겪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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