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민수는 꽤 오랫동안 섬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운명처럼 제주에 산다. 저서로는 ‘섬이라니, 좋잖아요’, ‘섬에서의 하룻밤’, ‘대한민국 100섬 여행’ 등을 집필한 여행작가다. '섬이라니 좋잖아요'는 작가가 제주에서 운영하는 민박집 이름이기도 하다.
“바람에 따라 계획을 바꾸고, 햇살에 따라 하루를 정하는 삶. 삶은 여행이 될 수 있고, 제주는 한 사람의 삶의 태도가 될 수 있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여행이 끝나고 남은 건 풍경이 아니라 삶이었다.
한 끼, 한 철, 한 계절로 배워가는 제주,
여행이 끝나도 여행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삶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살이에는 여유만 있는 게 아니다. 낯설음, 호기심, 생활력, 사람 냄새가 고루 섞여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진짜 제주살이에 대한 기록, 여행이 끝난 자리에 다시 시작된 '생활의 기록'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고 싶은 섬'을 하나 만들어주는 다정한 에세이다.
익숙함에 젖기보다는 새로움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태도, 속도를 내려놓고 계절과 리듬에 귀 기울이는 자세, 그리고 매일의 소소한 일을 여행처럼 마주하는 감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섬의 리듬을 따라 쓴 제주 생활의 기록
여행 작가였던 저자는 제주로 삶의 기반을 옮기고, 천천히 '도민의 언어'와 '섬의 리듬'을 익혀간다. 이 책에는 제주에 정착한 한 작가가 보고 듣고 느낀 제주의 일상들이 소박하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관찰자의 시선'이 아닌 '생활자의 언어'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표선목욕탕 언니들이 챙겨주는 여름 쌈밥, 고사리를 따러 중산간 도로에 빼곡히 늘어선 자동차들, 낚시꾼의 손에 들려 돌아오는 조과, 이름도 생소한 '고즐맹이' 한 손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장길. 이 모두가 느슨하지만 분명하게 제주를 이루는 조각들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제주의 삶은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사려 깊으며, 무엇보다도 생생하다.
관광지로만 알았던 제주의 참모습, 도민들이 살아가는 진짜 풍경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주에서는 일하는 날도, 만나는 약속도, 날씨에 따라 정해진다. 비가 오면 농사를 미루고, 바람이 불면 계획을 바꾼다. 오일장에서 아강발을 사고, 성산읍 어귀에서 고사리 앞치마를 발견하며, 함덕해변에서 커피를 마시다 문득 계절을 자각하는 순간들. 제주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바람처럼 불고, 사람의 인사는 바다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그 유연함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작가는 점점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삶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마음은 조금씩 느긋해진다. 그리고 이 느슨하지만 진한 관계의 섬에서, '여행하듯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익혀나간다.
바람에 따라 계획을 바꾸고, 햇살에 따라 하루를 정하는 삶
이 책에는 각 장면마다 사람이 있고, 제철 음식이 있고, 바람과 파도가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당신도 그곳의 언덕을 걷고, 시장의 냄새를 맡고, 표선 바닷가의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건넬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도 제주 어딘가에서 고사리를 따고, 자리를 구워 막걸리를 따르고, 고양이에게 사료를 건네며 해질녘의 하늘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여행의 끝자락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싶은 당신에게, 그 여행을 삶으로 이어가고 싶은 당신에게 권하는 한 권의 연습장 같은 책이다.
■저자와의 대화
김민수 작가는 “제주에서 삶과 여행의 공존을 배워가고 있다”고 말한다.
3년 차 새내기 제주도민으로 성읍민속마을에 살고 있어요. 제가 사는 집은 초가집입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낡은 집을 헐고, 있던 그대로 복원한 것이죠. 집이 완공되었을 때만 해도 육지와 제주를 반반씩 오가며 거주할 계획이었죠.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극구 말리더군요. 비워 놓는 만큼 집이 망가질 거라고.
두어 달의 독거생활을 경험한 끝에 아내에게 청했습니다. 제주로 내려와서 같이 살자고. 수원의 아파트에 두 아들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아내와의 제주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아내와 저는 둘 다 제주가 고향입니다만, 대부분의 인생을 육지에서 보냈습니다. 저는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상경했고요, 아내는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 올라갔습니다. 인구 천만의 서울에서 우연히 만나 연애 끝에 결혼까지 했으니 대단한 인연이라 생각됩니다.
처음에 아내는 제주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저야 이것도 여행이겠거니 하며 즐기는 편이었지만, 아내는 모든 것이 불편했죠. 해가 지면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캄캄한 시골 삶이 답답했던가 봅니다. 도시에서 저녁은 비로소 자유를 얻는 시간이잖아요. 아이들도 보고 싶었겠죠.
마당에 잔디를 깔고 나니 잡초들이 올라왔습니다. 난생처음 허리를 굽히고 그것들을 뽑아내야 했습니다. 좌식생활도 문제였고요. 건강했던 아내는 얼마 안 가 허리앓이란 고질병도 얻었습니다. 내성적인 아내가 활기를 얻은 것은 표선에 있는 수협목욕탕에 다니면서부터입니다. 일명 '표선목욕탕'이라 부르는 그곳에서 아내는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주 출신에 사투리까지 유창하다 보니 모두들 친근하게 대해 주셨답니다. 관계가 형성되니 존재감도 커졌겠죠.
아내는 가끔씩 생선, 귤, 말고기, 김치 등등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기도 합니다. 저는 아내를 통해 목욕탕 언니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역사, 문화, 풍습까지 제주를 그렇게 배워가고 있습니다.
제주를 여행으로 다닐 때부터 알게 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육지 출신이죠. 그들은 이주의 열풍으로 제주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던 2010년을 전후해 내려왔습니다. 초기에는 다들 어리숙했지만,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생활한 끝에 지금은 어엿한 중견 도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육지와 제주를 두루 경험했던 탓에 식견도 넓고 감각도 뛰어납니다. 그리고 즐길 줄도 알죠. 일을 마친 후에는 바다로 나가 파도를 타고요, 축제나 공연 플리마켓 등의 행사에도 빠지는 일이 없습니다. 또 유기 동물 관련 자원봉사 등에도 정성을 다하죠.
그들에게도 배웁니다. 삶과 여행의 교집합, 기묘한 공존을 익혀가는 중입니다.
작년 여름 출간을 제안받았을 때,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따지고 보니 제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더라고요. 여행자 신분일 때의 교만함이 부끄러워질 만큼 제주는 넓고 깊은 섬이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어설픈 단계에서의 시각과 느낌'이 오히려 재미있을 거라며 용기를 주시더군요.
하긴 제주에서는 집 밖만 나가도, 육지 사람들이 못내 그리워하는 여행이잖아요. 중고 물건을 사러 애월에 다녀오고 자동차 수리를 맡기고는 함덕해변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합니다.
“이번 책은 재미로 읽어주셔도 좋겠습니다. 읽다가 얼굴을 덮고 낮잠을 주무시거나 라면을 끓이고 난 후에 냄비 받침으로 쓰셔도 됩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원고 작업을 거듭하며 글쓰기가 조금 편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과 삐걱거림도 완화된 듯하고요. 비로소 몸이 풀린 것 같은데 마감이라니, 한편으론 아쉬움도 생겨나네요.
“저는 제주가 좋습니다. 아내와 함께 오래오래 누리고 싶죠. 혹시 압니까? 즐거움과 경륜이 무럭무럭 쌓이면 근사한 가이드북이라도 한 권 쓰게 될는지요. 자꾸만 부끄러워서 하는 말입니다”.
얼론북刊 | 288쪽 | 18,900원
[뉴스로드] 서진수 기자 gosu4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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