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석유화학과 섬유 산업이라는 전통 주력 업종의 구조적 침체가 심화하는 가운데, 태광산업이 미래 생존을 위한 사업 전환에 본격 착수했다. 조 단위 외부 자금을 투입해 뷰티·에너지·부동산 등 신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교환사채(EB) 발행 방식과 자사주 활용 문제를 둘러싸고 시장의 반발과 금융당국의 제재가 잇따르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1일 "사업구조 재편을 위한 전략적 투자에 약 1조5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올해 안에 1조원 이상을 집행하고, 2026년까지 나머지 금액을 순차적으로 투자하는 중장기 로드맵을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신규 진출이 추진되는 분야는 ▲화장품 제조 및 브랜드 인수 ▲에너지 및 친환경 연료 ▲부동산 개발 및 리조트 운영 등으로, 대부분 고정 수익 기반 또는 성장성이 높은 산업군이다.
태광산업은 뷰티·코스메틱 분야에 이미 자회사 투자를 통해 시장 진입 기반을 구축하고 있으며, 부동산 개발사업과 관련해서는 호텔·리조트 운영까지 아우르는 대형 포트폴리오를 구상 중이다.
회사 측은 "에너지·부동산·화장품 등은 자산 기반의 수익 구조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안정성과 성장성을 모두 고려한 전략적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태광그룹의 투자 계열사인 '티투프라이빗에쿼티'는 최근 애경산업 인수전 본입찰 대상자로 선정됐으며, 태광산업은 이번 인수전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뷰티 시장 진출이 선언적 계획이 아닌 실질 투자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블록체인 기반 금융연계 서비스, 리츠·PFV 투자를 포함한 부동산금융 부문도 사업 목적에 새로 추가될 예정이다. 태광산업은 오는 31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정관 변경을 통해 사업 목적을 전면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 방식을 두고는 시장과 금융당국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 6월 말 이사회를 열어 자사주 전량(지분율 24.41%)을 교환 대상 자산으로 설정한 3,200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EB) 발행을 의결했다. EB는 일반 채권과 달리, 일정 기간 후 발행 회사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채권이다.
문제는 해당 EB의 교환 대상이 자사주 전량이라는 점이다. 교환권이 행사되면 주식 희석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는 낮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유사한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비판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자사주 활용에 대한 공시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정정명령을 부과했다. 특히, EB 인수 대상자가 처음에는 명확히 공시되지 않았고, 조달 자금의 사용처도 구체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태광산업은 논란이 커지자, 7월 1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한국투자증권을 EB 발행 대상자로 확정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이미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에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갈등은 법적 다툼으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사측은 "단기적인 주가 방어나 자사주 소각보다 지금은 공격적인 신사업 투자에 집중할 시기"라며 교환사채 발행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EB 발행은 생존과 구조 전환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자사주 활용의 투명성 논란은 해소할 수 있도록 공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태광산업의 보유 현금은 약 1조9000억원 규모이지만, 실제 신규 사업에 투입 가능한 유동성은 1조원 미만이다. 기존 석유화학 및 섬유 설비에만 5000억원 이상의 유지 투자가 필요하며, 예비운영자금 명목으로 5600억원을 따로 보유 중이다.
특히 석유화학 제2공장과 저융점섬유(LMF)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설비 철거, 인력 재배치, 재고 정리 등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상태다. 중국 스판덱스 공장 역시 조만간 가동 중단이 불가피해 예비비 확보는 필수다.
태광산업의 이번 전략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생존'을 위한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석유화학 업황은 최근 원재료 가격 변동성과 수요 감소, 글로벌 친환경 규제 강화 등의 악재로 지속적인 수익성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섬유산업 역시 해외 저가 경쟁 심화로 과거 같은 실적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태광은 전통 제조 기반 대기업이지만, 지금처럼 기존 사업만으로는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 확보하기 어렵다"며 "다만 주주 신뢰를 유지하며 새로운 포트폴리오 전환을 추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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