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나는 풀이 있다. 들녘, 밭둑, 길가, 심지어는 공원 화단 옆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잎은 가늘고 기다란 모양에 거친 털이 돋아 있어 쉽게 만질 수는 없지만, 이른 아침이면 이슬을 머금은 채 반짝이며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꽃이 필 무렵이면 한 줄기마다 노란 이삭처럼 작은 꽃들이 촘촘히 맺히는데, 멀리서 봐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짚신나물'은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는 강한 생명력은 예부터 밭일 도중 지친 농부들에게 소박한 반찬이 되곤 했다. 보기엔 수수하지만,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식재료로서 소박한 정취를 담고 있다. 여름 한철에 제 맛이 나는 이 풀, 짚신나물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짚신나물'
선학초, 또는 낭아초라고도 불리는 짚신나물은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고도가 낮은 지역의 햇빛이 잘 드는 풀밭에 흔하게 자란다. 한국 전역에서 흔하게 자생하며, 러시아 동부, 몽골, 유럽, 일본 오키나와, 중국 동북부 등에도 널리 분포한다.
짚신나물은 높이 30cm에서 최대 1m까지 자란다. 전체적으로 잔털이 많아 표면이 거칠다. 잎은 어긋나며, 5~7개의 작은 잎이 좌우로 배열된 깃꼴겹잎 구조를 가진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잎 크기는 점점 작아진다.
꽃은 여름철인 6~8월 사이에 핀다. 노란색 꽃이 원줄기와 가지 끝에서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달리는데, 꽃차례의 길이는 10~20cm에 이른다. 꽃받침통은 약 3mm 정도로 짧고, 세로로 갈라진 줄이 있는 원통형이다. 끝은 다섯 갈래로 나뉘고, 그 아래에는 갈고리 모양의 털이 나 있어 주변 물체에 쉽게 붙는다.
꽃잎은 거꾸로 된 달걀형이며, 길이는 3~6mm 정도다. 수술은 모두 12개다. 열매는 수과로 맺히며, 꽃받침에 싸인 형태로 자란다. 8~9월에 익고, 열매에도 갈고리 모양 가시가 달려 있어 동물 털이나 옷가지 등에 잘 달라붙는다.
비슷한 식물인 산짚신나물과는 턱잎과 꽃차례로 구별된다. 짚신나물은 턱잎이 낫처럼 길게 나와 줄기를 감싸지 않는 반면, 산짚신나물은 부채나 반원형으로 줄기를 감싼다. 또한 짚신나물은 꽃이 줄기 끝에 빽빽하게 달리는 형태지만, 산짚신나물은 꽃 사이 간격이 더 넓고 다소 엉성하게 피는 편이다.
신선이 가져다 준 약초… 짚신나물에 얽힌 이야기
짚신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세 가지 설이 전해진다. 먼저,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열매에 붙은 갈고리 모양의 가시 때문이다. 이 열매는 지나가는 사람의 짚신에 잘 달라붙었고, 그렇게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번식했다는 데서 짚신나물이라 불리게 됐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 식물의 잎에서 유래한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 있고, 잎맥이 주름지게 퍼져 있는 모양이 옛날 짚신의 외형과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짚신나물의 어린순을 삶을 때 나는 냄새가 짚신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는 말도 있다. 삶을 때 퍼지는 특유의 향이 이 독특한 이름을 낳았다는 설명이다.
짚신나물의 또 다른 이름인 '선학초(仙鶴草)'라는 명칭에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중국 절강성 황아첨산 근처에 살던 나무꾼 한 명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 도끼에 팔을 베는 사고를 당했다.
피가 멎지 않아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백발의 노인이 갑자기 나타났고, 나무꾼의 사정을 들은 노인은 산기슭에서 자라고 있던 풀을 찧어 상처에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멈추자 감격한 나무꾼은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고, 고개를 들어보니 노인은 사라지고 두 마리 학만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제야 나무꾼은 자신을 살려준 존재가 신선이었음을 깨달았고, 학이 날아간 그 순간을 기억해 이 풀을 '선학초'라 불렀다고 한다.
더울수록 더 맛있어지는 짚신나물
짚신나물은 제철인 여름에 특히 풍미가 살아나지만, 데쳐 말려두면 겨울에도 즐길 수 있어 오래전부터 계절을 넘어 식탁에 올라왔다. 햇볕이 강하고 기온이 오를수록 더욱 연하고 풍미가 깊어진다. 잎과 줄기 모두 식용할 수 있으며, 생으로 먹기보다 데쳐서 무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살짝 데친 뒤 초고추장이나 간장, 된장으로 양념하면 쌉싸래한 맛이 살아나 입맛을 돋운다. 열무김치처럼 가볍게 매콤한 풍미와 함께 씹을수록 은은하게 남는 쌉싸름함이 특징이다. 짚신나물의 이 독특한 맛은 양념을 과하게 하지 않아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양념에 무쳐 반찬으로 내거나, 밥에 비벼 한 끼 식사로 즐기기도 한다. 국에 넣어 끓여도 무난하며, 나물볶음에도 잘 어울린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름철 수확한 짚신나물을 데쳐 말려두었다가 겨울철에 물에 불려 반찬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건나물로 보관해 두면 계절이 지나도 그 맛을 이어갈 수 있어 예부터 꾸준히 이용됐다.
지혈 효과가 뛰어난 짚신나물
짚신나물은 한방에서 용아초라 불리며 약용으로도 활용된다. 전초 전체를 이용하며, 맛은 쓰고 떫고, 성질은 평하다. 오래전부터 각혈, 토혈, 혈뇨, 혈변 등 내부 출혈 증상에 두루 사용됐고, 자궁출혈이나 대하 같은 여성 질환, 과로로 인한 무력감, 외상 출혈, 타박상, 옹종에도 활용됐다.
짚신나물은 영양분도 풍부하다. 같은 양 기준으로 배추나 상추에 비해 단백질과 당질은 4배 이상, 지질은 5배 이상 많다. 섬유질은 15배, 철분은 10배 이상이며, 비타민C는 상추보다 무려 13배 넘게 함유돼 있다. 아그리모닌을 비롯해 항산화 물질도 다양하게 포함돼 있어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혈 효과도 주목할만 하다. 이는 아그리모닌 성분이 혈액 응고를 돕기 때문인데, 실제로 잇몸 출혈이나 코피, 상처 지혈에 쓰이기도 했다.
항균과 소염 작용도 있어 구내염이나 구취 개선을 위해 달인 물로 양치에 활용하기도 한다. 질 트리코모나스충이나 촌충에 대해서도 살충 효과가 보고됐고, 땀띠, 풀독, 습진, 가려움증에도 효과가 좋다.
다만 짚신나물은 복용량을 지켜야 한다. 과량 섭취할 경우 구토나 메스꺼움, 어지럼증, 얼굴 화끈거림,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한국한의약진흥원에서도 짚신나물 추출물이 위염 개선과 항염, 진통 작용에 효과를 보였지만, 고농도 복용 시 이상 반응이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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