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노란봉투법·주 4.5일제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을 둘러싸고 노동권 보장과 기업 경쟁력 저해 사이에서 학계·재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2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전국 경영·경제학과 교수 1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 정부의 고용노동정책 중 기업 경쟁력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법안으로 ‘근로시간 단축(31.1%)’이 꼽혔다. 노조법 제2·3조 개정안으로 알려진 ‘노란봉투법’은 28.2%로 2위를 차지했다.
특히 노란봉투법은 이전 정부부터 계속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해 온 법안이다. 해당 법은 하청업체 노동조합도 원청기업과의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고 파업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영계 전문가들이 노란봉투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현 정부의 노동 정책 방향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노란봉투법 도입과 포괄임금제 금지 등 노동친화적인 공약을 전면에 내세워 왔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이 노동자의 기본권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실질적인 노동조건이 연결돼 있음에도 교섭권이 없어 권리 보장이 취약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밖에도 파업 손해배상 소송이 과도하게 제기돼 헌법이 보장한 쟁의권이 사실상 위축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제한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을 대상으로 쟁의행위를 한 노동자들은 몇백 억대 손해배상 청구와 장기간의 형사고소를 당하게 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노동계는 법적으로 정당한 단체행동조차 비용 청구로 되돌아오는 구조가 노동자의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며 쟁의권 보장을 위해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법적 제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정권은 이 같은 노동계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친노동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 대통령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명하며 주목받은 바 있다. 김 후보자는 역대 고용노동부 장관 가운데 처음으로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자 현직 노동자 출신인 인물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27일 김 후보자에 대해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하며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인물”이라며 “산업재해 감소, 노란봉투법 개정, 주 4.5일제 도입 등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친노동 기조는 지방정부 차원의 제도 실험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달 20일부터 67개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주 4.5일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IT, 제조, 언론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해당 시범사업은 노동생산성, 직무만족도 등 44개 세부지표로 성과를 분석하고 적정 노동시간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 후 정부에 제도 개선을 건의할 방침이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은 주 4.5일제 법제화와 노란봉투법 도입에 대해 속도 조절에 나선 상황이다. 민주당은 코스피 5000시대 달성 등의 상법 개정안을 먼저 통과시킨 뒤 노란봉투법 법안을 늦어도 7월 임시국회까지는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주 4.5일제 도입은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핵심 과제에서 일단 제외된 상태다.
재계는 법안이 통과될 시 협업 기반의 산업 생태계를 막고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재계 관계자는 “법이 통과되면 즉시 하청기업들과 교섭 의무를 이행해야 하기에 기업들이 대응할 여지가 없다”며 “결국 모든 사업을 직접 수행하려는 움직임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미 공동 성명도 내고 국회 시위도 많이 했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서는 아예 ‘우린 간다, 통과한다’는 식으로 완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며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법안에 대한 조정이나 조율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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