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3일 취임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다. 인수위원회 없이 곧장 출범한 새 정부는 불과 한 달 만에 내각 인선, 특검 추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대출 규제 개편 등 굵직한 정책을 쏟아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속도의 정치’는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필요한 건 속도 그 자체가 아니다.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정합성을 위한 ‘국정 질서의 설계’가 본격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제 “무엇을 얼마나 빠르게”가 아니라, “무엇을 어떤 순서로,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로 정치의 질문이 바뀌고 있다.
◇속도의 정치에서 구조의 국정으로
이재명 정부의 첫 한 달은 단연 빠르고 강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을 시작으로, 16개 부처 장관 인선,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 ‘3대 특검법’ 국회 통과, 부동산 대출 규제 개편, 상법 개정안 발의까지 쉼 없는 정책 드라이브가 이어졌다.
국정 초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속도’는 탁월한 도구였다. 하지만 속도는 출발선일 뿐이다. 정책은 병렬적으로 밀어붙인다고 작동하지 않는다. 각 과제의 순서, 상호 정합성, 그리고 사회적 수용성이라는 ‘구조적 리듬’이 필요하다.
가령 추경으로 재정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물가 안정을 위한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경기 부양과 물가 억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노동계 중심 내각 구성이 산업계와의 갈등으로 번질 경우, 사회적 신뢰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정책 목표 간 모순을 줄이고 실행력을 높이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 조절’이 아니라 우선순위의 계층화다.
단기적으로는 경기 대응과 금융 지원을 신속히 진행하되, 상법·노동법 개정 등 구조적 개혁 과제는 중기 로드맵과 사회적 논의 기반을 함께 갖춰야 한다. 이때 핵심은 ‘무엇을 먼저, 무엇은 나중’이라는 구분이 아니라, ‘어떤 기반 위에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특검은 대상이 아니라 운영 구조가 관건
이재명 정부의 ‘3대 특검법’은 국면 전환을 위한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였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을 겨냥한 내란 혐의 특검은 여야를 다시 대립각으로 몰아넣으며 강한 정치적 파급력을 일으켰다.
그러나 특검이 정권 교체 후 정치적 응징 도구로 인식된다면, 그 제도 자체의 신뢰도는 빠르게 무너진다. 지금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누가 수사받느냐’가 아니라, ‘그 수사가 얼마나 정당하고 절차적으로 작동하느냐’다.
정치가 아닌 제도로서 특검이 기능하려면, 운영 구조의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수사 일정과 핵심 쟁점을 국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수사단 인사는 여야 교차 추천 방식으로 구성해 편향성을 차단하며, 수사 내용 공개의 범위와 시점, 정보 접근의 절차를 명확히 해야 한다. 수사 종료 이후 국민 앞에 직접 설명하는 공개 보고 절차를 제도화할 필요도 있다.
특검은 성과가 아닌 절차 기반의 신뢰로 유지되는 제도다. 그 신뢰를 설계하지 않으면, 특검은 정치가 아니라 구조로 기능할 수 없다.
◇대출 규제는 ‘장벽’이 아니라 ‘선별 통로’여야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규제 개편은 새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였다. 특히 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해 고액 대출과 투기를 차단하겠다는 목표는 명확했다. 하지만 이 기준이 무주택 실수요자, 특히 청년층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면서, 오히려 ‘내 집 마련’ 기회를 막는 결과로 이어졌다.
핵심은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정밀도와 구조다. 대출 규제는 통제 수단이 아니라, 실수요자를 선별하는 구조적 통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단순한 완화가 아니라 구조 재설계가 필요하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중저가 주택 구입자에게는 우대금리나 보증비율 조정, 지역·소득·연령별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차등 적용, 정부가 초기 자금을 일부 분담하는 ‘헬프 투 바이(Help to Buy)’ 방식 도입 등은 단순한 정책 옵션이 아니라, ‘목적 기반 금융(Purpose-Based Finance)’이라는 구조적 접근의 일환이다.
선별 기준 없이 일률적으로 규제하면 시장의 신뢰는 무너진다. 규제는 장벽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당화된 선별 시스템으로 기능할 때 효과를 갖는다.
◇선언이 아닌 설계, 더 빠르게가 아니라 더 뚜렷하게
이재명 정부는 출범 한 달 만에 ‘빠름’이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인사, 재정, 입법, 규제 등 각 분야에서 국정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정권 초반의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국정은 선언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정책은 메시지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로 증명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속도’가 아니라, 더 명확한 ‘질서’다. 더 많은 정책이 아니라, 더 정합적인 설계다. 더 많은 메시지가 아니라, 더 구조적인 해법이다.
속도는 성과의 전제일 수 있지만, 질서 없이 달리는 속도는 곧 피로와 혼선으로 돌아온다. 이 전환에 성공하면, 이재명 정부는 ‘빠른 정부’가 아닌 ‘성공적으로 설계된 정부’로 기억된다.
Copyright ⓒ 직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