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유통 기업 월마트를 지배하는 월튼 가문의 행보에 세계 각국 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가문 경영이 일반화 된 미국 경제계에서 재력 순위 1위를 차지하는 월튼 가문은 최근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월튼 가문이 미국을 넘어 글로벌 유통업계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세대교체 향방에 따라 세계 각국 유통기업들의 사업 전략도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K-푸드 인기에 힘입어 미국 진출을 본격화한 국내 식품·유통기업들 입장에선 월튼 가문의 세대교체는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590조 재력 일군 동네 슈퍼마켓 신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월튼家 사람들
가문 전체 재산만 약 4300억달러(한화 약 590조원)에 달하는 월튼 가문의 역사는 월마트의 창립자인 샘 월튼(Samuel Walton)과 그의 동생 버드 월튼(Bud Walton)으로부터 시작된다. 두 형제는 1962년 아칸소주 로저스시에 작은 할인점을 창업하면서 유통업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샘 월튼이 기업 경영 전반을, 동생 버드 월튼이 실무 업무를 각각 담당했다. 이들 형제는 '사람'을 중심에 둔 사업 철학을 기반으로 평생 갈등 한번 없이 완벽한 호흡으로 사업을 성장시켰다. 월마트의 사례는 지금도 대학 수업에서 이상적인 형제경영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창업주 형제가 모두 세상을 떠난 후 2세들이 월마트를 이어받았고 지금은 3세 경영으로의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3세들이 경영을 도맡고 고령의 2세들이 뒤를 받쳐주는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 창업주 형제의 형인 샘 월튼은 살아 생전 3남 1녀의 자녀를 뒀다. 현재 월튼 가문의 실질적인 수장은 샘 월튼의 장남 롭슨 월튼(Robson Walton)이 맡고 있다. 그는 아버지 샘 월튼이 세상을 떠난 직후인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23년 가량이나 월마트 CEO를 역임했다. CEO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줄곧 이사회에 남아 월마트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다만 올해 나이 88세로 고령에 접어든 만큼 완전한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단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샘 월튼의 차남인 존 월튼(John Walton)은 2005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고 그의 유산은 부인 크리스티 월튼과 아들 루카스 월튼에게 상속됐다. 삼남인 짐 월튼(Jim Walton)은 월마트 계열사 중 한 곳인 아베스트 은행 CEO를 역임한 뒤 월마트 이사회에 합류했다. 가문 내에서는 형인 롭슨 월튼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만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해 온 창업주의 영향을 받아 단 한 번도 분란을 일으킨 적 없다. 샘 월튼 유일한 딸인 앨리스 월튼(Alice Walton)은 월마트 경영에는 일제 참여하지 않고 일찌감치 예술 관련 분야에 주력했다. 앨리스 월튼은 가문의 지원을 받아 '크리스탈 브릿지스 미국 미술관'을 설립해 오너 겸 큐레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3세 경영도 교통정리는 어느 정도 끝난 상태다. 월마트 2대 경영인 롭슨 월튼은 슬하에 딸 1명만을 두고 있어 자신의 후계자로 사위인 그레그 페너(Greg Penner)를 선택했다. 그레그 페너는 월마트 평사원으로 시작해 CFO, 전자상거래 위원장 등의 핵심 요직을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현재 월마트의 CEO는 롭슨 월튼의 충복으로 불리는 더그 맥밀런(Doug McMillon)가 맡고 있지만 굵직한 결정은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레그 페너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행기 사고로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존 월튼의 외아들의 루카스 월튼(Lucas Walton)도 월마트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친척 형제들에 비해 일찌감치 지분을 상속받은 루카스 월튼은 현재 월마트 이사회 멤버이자 환경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가문 내에서 유독 환경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월마트와 별개로 친환경 에너지 개발을 지원하는 빌더스 비전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월마트 승계 과정에서 아직까지 별 다른 갈등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미국 현지에선 루카스 월튼과 그레그 터너와의 갈등 가능성을 염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장남 승계를 고수해 온 월마트 가문인 만큼 루카스 월튼의 배경과 명분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삼남인 짐 월튼은 슬하에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고 있지만 현재 장남인 스튜어트 윌튼(Steuwart Walton)만이 월마트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형제들은 월튼 패밀리 신탁사에만 소속돼 있는 상황이다. 스튜어트 월튼은 월마트 해외사업부 총괄 직을 역임한 후 현재는 전자상거래 위원장을 맡고 있다. 월마트의 미래 먹거리를 담당하는 핵심 요직을 두루 거진 치력 덕분에 차기 월마트의 실무 경영을 담당하는 CEO 등극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샘 월튼 동생이자 월마트 공동 창업자인 버드 월튼 후손들도 월마트 가문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지분만 소유하고 있을 뿐 월마트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대신 사업적으로는 월마트와 긴밀한 협력 관계 지닌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일례로 버드 월튼의 장녀인 앤 윌튼과 사위인 스탠 크롱키는 월마트가 새로운 신규 매장을 열기 전에 주변의 부지를 미리 구입해 개발하는 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통상 대형마트가 생기면 교통, 상권 등의 인프라가 함께 조성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투기나 다름없는 사업 방식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이들의 사업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스탠 크롱키는 부동산 투기사업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재산을 앞세워 스포츠 분야에 진출해 지금은 글로벌 스포츠 산업의 거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현재 NFL 로스앤젤레스 램스, 프리미어리그 아스날, NBA 덴버 너기츠 등 세계 각국의 프로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또 로스엔젤레스의 최첨단 복합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단지인 소파이 스타디움을 건설하기도 했다. 버드 월튼의 차녀인 낸시 월튼(Nancy Walton)은 일찌감치 예술 분야에 진출했고 현재 줄리아드 음대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월튼 가문이 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은 수백곳에 달하지만 직접 경영하는 곳은 월마트, 월튼 엔터프라즈(Walton Enterprises LLC), 월튼 패밀리 신탁사(Walton Family Holdings Trust) 등 총 3곳이다. 월마트의 경우 지금의 월튼 가문을 있게 만든 기업으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며 미국 유통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월마트의 연간 매출액은 약 6500억달러(약 900조원)에 달했다. 20여개 국가에서 1만5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시가총액은 이달 초 기준 약 7600억원(약 1048조원) 가량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현재 월마트는 총 13곳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들 자회사는 월마트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들로 소량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은 자회사에서 제외됐다. 투자 기업까지 합치면 월마트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수백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마트의 자회사는 월마트 캐나다, 월마트 멕시코, 월마트 칠레, 월마트 아프리카 등 주로 해외 법인이다. 또 멤버십 창고형 마트 샘스클럽, 인도 최대 이커머스 업체 플립카트(Flipkart), 회원제 창고형 매장 샘스 클럽 등도 자회사 명단에 올라 있다.
'월튼 엔터프라이즈' '월튼 패밀리 신탁사' 등은 월튼 왕국을 구성하는 핵심 기업들이다. 월튼 가문은 이들 기업을 통해 수많은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두 기업이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월마트만 하더라도 월튼 엔터프라이즈가 전체 지분의 37.3%, 월튼 패밀리 신탁사가 8.1%를 각각 가지고 있다. 가문의 일원이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월마트 지분은 0.79%에 불과하다. 월튼 엔터프라이즈, 월튼 패밀리 신탁사 등은 모두 비상장 기업으로 지배 구조 또한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되고 있다. 창업주 형제인 샘 월튼과 버드 월튼은 가족 간에 불화를 염두해 가족 신탁사 형식으로 지배 구조를 구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월튼 엔터프라이즈가 지배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월마트 외에 아베스트은행(Arvest Bank), 윗 유한회사(WIT LLC) 등이 있다. 이 중 아베스트 은행은 샘 월튼의 삼남인 짐 월튼이 오랜 기간 CEO로 재직했고 엘라마 투자회사는 엘리스 월튼이 운영했다. 아베스트 은행은 아칸소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상업은행으로 운영 자산 규모는 180억달러(약 24조원), 직원 수는 6000여명 가량이다. 윗 유한회사는 ETF 및 펀등 등의 상품을 취급하며 운영 자산 규모는 50억달러(약 7조원)이다. 월튼 가문의 일원이 개인적으로 설립한 기업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스탠 크랑키가 이끌고 있는 크롱키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등을 비롯해 밴디드 위스키, 게임컴포지츠, BNP 투자회사 등이 있다.
미국 경제계 한 인사는 "월마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유통 기업이긴 하지만 사실상 전 세계 유통업계를 주도할 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며 "월마트를 소유한 월튼 가문의 세대 교체는 단순히 가문 리더십 변화를 넘어 글로벌 유통업계에 상당히 중요한 이슈로 평가받는 이유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농심, 삼양, 풀무원, 에프앤비홀딩스 등이 월마트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고 다른 한국의 식품·유통기업들도 앞다퉈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있어 월마트의 세대교체는 상당히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것이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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