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AI(인공지능) 기술이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 산업은 AI 도입의 ‘1차 수혜자’로 급부상 중이다.
노동 집약적이고 반복성이 높은 제작 공정,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제작 시간, 고비용의 인력 구조. 그간 애니메이션은 기술의 진보와 가장 먼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지난 6월, 국내에서는 CJ ENM이 자체 AI 시스템으로 제작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캣 비기(Cat Biggie)'를 공개했다.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단 6명의 제작진에 의해 5개월 만에 완성됐다는 것이다. 대사 없이 감정을 전달하는 논버벌 숏폼 애니메이션이라는 포맷도 흥미롭지만, 핵심은 CJ ENM이 개발한 ‘시네마틱 AI’ 시스템이 본격적인 실전에 투입됐다는 데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다. CJ ENM은 한국적 정서를 담은 장편 AI 영화 '아파트', 신화를 기반으로 한 AI 드라마 'Legend'까지 후속 라인업을 계획하고 있다. AI 조직의 확장, 글로벌 API 커스터마이징, GPU 인프라 투자도 진행 중이다. 이제 콘텐츠 기업이 기술 기업이 되는 전환점이,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전략적 필수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과 중국에서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일본 지상파 MBS에서 방영 중인 '트윈스 히나히마'는 제작의 95%를 생성형 AI가 담당했다. 콘티 몇 컷과 간단한 설명만 입력하면, AI가 선 정리부터 채색, 배경, 캐릭터 동작까지 자동으로 완성한다. 전통적인 제작 공정에 비해 60~70%의 시간과 비용을 절감했다는 평가다.
중국 역시 공격적이다. 중국미디어그룹(CMG)은 지난해 AI 애니메이션 '천추시송(千秋詩頌)'을 CCTV에 방영했고, AI 스타트업 ‘미궈 AI’는 주간 만화 100편을 생성형 AI로 제작할 계획이다. “하루 14명이 하던 작업을 5.5명으로 줄였다”는 설명은, 곧 산업 구조 자체의 변화를 의미한다.
기술의 진화는 언제나 기존 질서에 도전한다. 지금의 AI 애니메이션 역시 마찬가지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우려, 예술성과 감수성을 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선은 여전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기술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이제 질문은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콘텐츠 산업은 지난 수십 년간 카메라, 포토샵, 3D 그래픽, 가상 프로덕션 등 기술의 힘으로 진화해왔다. 그리고 이제, AI가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라는 복잡하고 비용 높은 장르에서 AI는 ‘제작 공정의 혁신’을 넘어, 창작 생태계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명확하다. 기술이 예술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일, 창작자의 역할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윤리적 설계, 그리고 산업 생태계 전반에 걸친 책임 있는 기술 운용이다.
AI 기반 콘텐츠는 단순 효율화 도구를 넘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경쟁 지형을 재편하는 새로운 기술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CJ ENM과 같은 대형 기업뿐 아니라, 기술력을 보유한 스타트업 및 중형 제작사들 또한 AI를 통해 제작 경쟁력과 창작 실험을 동시에 추구하는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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