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고 질문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토론 모임인 ‘필로어스’에 참여하며 들었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모두가 같은 책을 읽지만 완전히 다른 질문을 세미나에 가져왔습니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누구는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대해 궁금해하고, 누구는 테티스의 모성에 대해 궁금해하며, 누구는 전쟁 중 신들과 인간들의 상호작용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왜 우리는 같은 책을 읽지만 모두 다른 것을 궁금해할까요?
저는 그 차이가 각자의 삶의 경험과 가치관, 그리고 관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책 속 동일한 상황도 나의 관심사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심사나 가치관은 각자의 삶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죠. 그래서 질문 속에는 각자의 삶이 녹아져 있어요. 그렇기에 질문은 개인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특성을 가진 질문은 또한 나를 알아가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드는 나의 질문들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으신가요? 질문에 어떤 패턴이 있을 수도 있고 유독 한 분야에 질문이 몰려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질문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도구가 됩니다. 즉, ‘내가 무엇을 질문하는가’를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하는 행위를 책을 넘어 삶 전체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에 대해 무엇을 알아가야 하는 걸까요? 저는 그것이 결국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즉 나의 욕망을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질문하다 보면, 내가 궁극적으로 궁금한 것을 여러 방면으로 쪼개어 질문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탐구하기 위해 징검다리 질문들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은 어떤 어미를 쓰느냐만으로도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어미의 작은 차이가 질문의 방향성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의 효과가 궁금한지, 영향력이 궁금한지, 그것과 다른 것의 차이가 궁금한지, 관계성이 궁금한지에 따라 질문의 주어는 같아도 질문의 방향과 본질은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길을 잃지 않게 내가 궁극적으로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늘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묻고 싶은지’ 모호하게만 알 경우 질문의 어미를 날카롭게 다듬기 어렵고, 질문의 방향성도 흐릿해지기 때문입니다. 도착지를 명확히 알고 이정표를 세운다면, 길을 잠시 헤맬 수는 있어도 잃지는 않을 겁니다. 이 원리는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려면 삶 속에서도 이정표를 잘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욕망을 왜 가지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삶에서 내 욕망을 아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누구와도 쉽게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모두 타인의 의견과 생각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 있습니다. 타인의 생각이나 의견을 쉽게 알 수 있으니 그들의 생각이, 의견이, 그리고 욕망이 마치 나의 것처럼 느껴지기 너무나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질문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나의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 직시해야 합니다. 타인이, 혹은 사회가 좋다고 말하는 것과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고, 사회가 옳다고 말하는 게 나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왜 욕망하는지 나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작은 질문 하나가 타인과 다른 나의 고유성을 드러내듯, 우리 모두는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천편일률적으로 좋고 옳은 단 하나의 것이 존재할까요?
예를 들어, 사회가 말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듣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돈이 되는 전공을 공부한 후 대기업에 입사해 돈을 많이 벌고, 결혼을 해 아이를 낳는 삶. 물론 이런 삶이 좋은 삶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좋은 삶 중 하나지요. 하지만 이것이 왜 좋은 삶인가요? 우리는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죠? 많은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과연 이것만이 좋은 삶일까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무엇인가요? 많은 경우, 우리는 타인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쉽게 섞어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와 더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무엇이 나의 것이고 사회의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집니다. 내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 어디서, 왜 오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적 욕망과 나의 욕망을 분리하는 첫 번째 단추는 바로 ‘질문하는 것’입니다. 나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나를 알아가고, 온전한 나의 욕망을 탐구하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을 사는 방법이자 ‘나’로 고유하게 사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나의 욕망을 잘 아는 것은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 순간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진로를 정할 때, 관계를 유지하거나 멈출 때, 어떤 가치에 시간을 투자할지를 판단할 때 등,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이때, 내 스스로 나의 욕망을 안다는 것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알고 있다는 뜻이며, 그것은 곧 선택의 든든한 기준이 됩니다. 기준이 선 사람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중심에 두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변의 소리나 사회적 기준에 흔들려, 혹은 나의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 몰라 내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될 때도 있습니다. 나의 욕망이 불분명할수록 삶의 중심축은 바깥에 놓이게 되고 나답지 않은 길 위를 걸어가게 됩니다.
책 속에서 알고 싶은 것을 주어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질문하고 탐구하듯이, 삶에서도 나의 욕망을 잘 인지하고 있다면 주어진 상황과 선택지 속에서 가장 나다운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은 욕망을 명확히 하고, 명확한 욕망은 ‘나에게 좋은 선택’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모여 나다운 삶을 만듭니다.
‘나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를 알아가고, 타인과 세상과 관계 맺으며,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가고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나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고유성 역시 존중하며, 사회의 기준이 아닌 나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쫓아 살아가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을 통해 나 자신과 내 욕망을 이해하고, 그 욕망을 중점으로 선택할 때, 나는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는 곧 진짜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길이며,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책임지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삶의 출발점이 됩니다.
질문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고, 삶을 꾸려나가는 모든 분들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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