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대전시립미술관이 제22회 이동훈미술상 특별상 수상작가전 ‘이은정·정우경’을 오는 7월 15일부터 9월 7일까지 제5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동훈미술상은 한국 근·현대 미술의 선구자이자 대전·충청 지역 화단의 기틀을 다진 故 이동훈 화백(1918~2001)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3년 제정됐다. 이동훈 화백은 한국 전통회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구축했으며, 후학 양성과 지역 미술 발전에도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올해 특별상은 회화를 통해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이은정 작가와 정우경 작가에게 돌아갔다. 두 작가는 자신만의 시선과 매체 실험으로 동시대 한국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이은정 작가는 역사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삶을 회화로 복원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흐릿한 먹선과 은은한 펄, 한국화 기법을 활용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여성들을 화폭 위로 소환한다. 대표작 ‘박금 할머니 3대 가계도’, ‘조외순 할머니 4대 가계도’는 부계 중심 서술에서 소외된 어머니, 딸, 며느리, 종부의 존재를 시각적 족보로 불러들이는 작업이다.
이은정의 작업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존재의 증명이며, 감각의 정치학이다. ‘만들어진 백합’ 연작에서는 순결과 정절이라는 상징을 해체한다. 직접 키운 백합꽃잎을 말려낸 뒤 플라스틱 빨대에 꽂음으로써, 사회가 부여한 순결의 기표가 허상임을 드러낸다. ‘못난이 삼형제’ 연작 또한 인형을 ‘삼형제’로 명명했던 과거의 성별 관념을 비틀며, 성별 인식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를 질문한다.
이은정은 익숙한 오브제를 통해 사회가 내면화한 위계와 고정관념을 해체하며, 사소해 보이는 대상 안에 구조적 질문을 숨긴다. 그녀의 회화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주변부의 서사를 중심에 위치시킨다.
정우경 작가는 뜨개라는 수공예 행위를 회화로 전환하며, 시간성·촉각성·감정과 기억의 결을 화면 위에 직조해낸다. ‘과거, 현재 그리고 대지’ 시리즈는 어머니에게서 전해 받은 리듬과 기억을 반복적 붓질로 옮겨오며, 생명과 감정의 층위를 쌓는다. 실의 중첩과 붓질은 화면을 넘어, 생명력과 시간의 지층으로 확장된다.
정우경은 평면의 물리적 조건을 변형해 캔버스를 구부리거나 부풀리며, 화면에 관계적 공간과 감각의 층위를 부여한다. 이는 회화를 관람자의 신체적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전략이자, 정우경 작업의 핵심 미학이다.
‘과거, 현재 그리고 에너지’ 연작에서는 강렬한 보색 대비와 반복된 손의 결로 에너지를 시각화한다. 이 시리즈에 반복 등장하는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생명과 모성, 공동체의 상징으로 읽힌다. 뜨개, 꽃, 색, 결이 하나로 얽히며, 관계와 감정, 기억이 교차하는 생동의 장을 만들어낸다.
윤의향 대전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회화를 통해 동시대 삶과 감수성을 섬세하게 비추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환기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전했다.
제22회 이동훈미술상 특별상 수상작가전 ‘이은정·정우경’은 이동훈 화백의 예술정신을 계승하며, 대전 미술의 정체성을 새롭게 조망하고 지역 미술의 지속적 성장 가능성을 탐색하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 관련 정보는 대전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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