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 ‘아르누보의 꽃: 알폰스 무하’ 전시는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온 작가, 무하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특히 정규 도슨트를 들으며 관람한 것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단순히 작품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하의 삶과 시대적 배경, 작품에 담긴 상징과 철학까지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눈앞에 놓인 작품들이 단순한 ‘예쁜 그림’이 아닌, 그 시대와 예술가의 사유가 고스란히 담긴 언어라는 사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전시 초입부에서 만나게 되는 상업 포스터들은 무하가 파리에서 어떻게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해 갔는지를 보여준다. 도슨트는 당시 프랑스 광고 문화와 무하의 만남, 그리고 그가 어떻게 시대의 요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는지를 쉽고도 인상 깊게 설명해 주셨다. 특히 사라 베르나르와의 협업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예술성과 상업성이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상호 상승 작용을 하며 하나의 스타일을 만든 무하의 태도는 오늘날 예술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그의 여성상은 단순히 이상화된 이미지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 시간의 순환을 하나의 상징으로 풀어낸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화면에 담긴 곡선, 장식적 패턴, 색의 흐름이 모두 철저한 계획 아래 조화롭게 구성되었다는 사실도 새삼 놀라웠다.
무하의 후반기 작품인 슬라브 서사시와 민족주의적 주제를 다룬 작업들을 마주했을 때는 전시장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여기서부터는 화려한 장식미 뒤에 숨어 있던 무하의 진심과 철학이 전면에 드러난다. 도슨트는 그의 삶 후반부가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시민 예술가’로 살아간 여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하가 조국 체코를 향한 사랑과 독립의 염원을 어떻게 예술에 녹여냈는지를 들으며, 나 역시 예술가로서 내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느낀 또 하나의 감동은 무하가 표현한 ‘아름다움’이 단순한 외적 장식이 아니라 시대를 위로하고 이끄는 힘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늘 ‘행복’과 ‘희망’을 주제로 작업해오고 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아름다움이 메시지가 되고, 감정이 철학이 되는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특히 전시 말미에 소개된 무하의 손 그림 드로잉들과 메모, 스케치는 그의 작업이 철저한 준비와 관찰, 감성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한 장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여정을 상기시켜 주었다.
전시장을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하가 살아 있었다면 디지털 기술과 AI 시대를 어떻게 마주했을까? 그는 분명 새로운 도구들을 받아들이되 인간의 감성과 시대의 정신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작품 안에 진심을 담고 관객과 따뜻하게 연결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한 명의 작가를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의 작업과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아름다움과 철학, 시대와 예술 사이에서 묵묵히 길을 걸어간 무하처럼, 나 역시 나만의 리듬과 빛으로 앞으로도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그리고 그 여정 안에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순간들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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