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한스경제 류정호 기자] 프로축구 K리그1(1부) FC서울의 상징과도 같던 기성용의 포항 스틸러스 이적이 불러온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레전드’로 불리던 기성용이 팀을 떠나면서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분노의 방식이다. 응원과 비판 사이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고, 결국 그 끝은 도를 넘은 압박으로 향했다.
서울은 지난 25일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원한 캡틴과의 인연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며 기성용과 결별을 공식 발표했다. 기성용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감독님과 대화에서 팀의 계획에 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처음엔 은퇴를 고민했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이적 배경을 밝혔다. 그는 연봉을 대폭 삭감하면서까지 현역 연장을 선택했고, 박태하 포항 감독의 직접적인 러브콜에 힘입어 포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이적 발표 직후 팬들의 실망은 분노로 번졌다. 일부 서울 팬들은 29일 K리그1 21라운드 포항과 홈 경기 시작 전 서울월드컵경기장 북측 광장에서 ‘무능·불통·토사구팽 FC서울 장례식’이라는 이름의 집회를 열었다. 방어회를 올린 제사상과 향을 피우는 퍼포먼스로 구단에 항의했다. 또한 경기장 입장 후에도 팬들의 항의는 계속됐다. 경기 시작 이전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김기동 나가”가 울려 퍼졌다. 경기 전 선발 명단 안내 때도 김기동 감독의 이름이 나오자 강한 야유를 쏟아냈다. 경기 시작 이후에는 기성용의 응원가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김기동 감독이 전광판 화면에 잡힐 때마다 야유가 이어졌다. 서울이 포항에 4-1 대승을 거뒀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이날 팬들의 분노는 경기 후 벌어진 ‘버스 막기’로 정점을 찍었다. 일부 서울 팬들은 퇴근하려는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길을 막았다. 경찰과 소방 인력까지 출동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찰은 “지금 일반 차량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며 경고했지만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부는 오히려 경찰을 향해 “경찰도 나가라”고 소리쳤다. 유성한 서울 단장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이 팬들을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팬들은 김기동 감독의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김기동 감독이 버스에서 내려 “죄송하다. 이틀 뒤 열릴 간담회에서 모든 걸 설명하겠다”고 말한 뒤에야 팬들은 해산했다. 그 과정에서 김기동 감독의 사과만 받고 해산하겠다던 팬들은 또다시 해명을 요구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선수단도 40분 넘게 버스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단순히 퇴근길이 지연된 문제가 아니다. 심리적 스트레스는 물론, 팀 분위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울 팬들의 실망은 이해할 수 있다. 서울은 이미 박주영, 이청용 등 구단의 상징적인 선수들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던 전례가 있다. 여기에 기성용마저 떠났으니 팬 입장에서는 분노가 커질 만하다. 문제는 그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선수단 버스를 막는 행위는 단순한 불만 표시가 아니다. 이는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서울은 다음 달 2일 전북 현대와 대한축구협회 코리아컵 8강전을 치른다. 전북은 최근 17경기 무패(12승 5무)라는 최고의 상승세를 타고 있다. 체력 회복이 절실한 상황에서 선수들의 퇴근조차 막아선 행동이 결국 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감독의 ‘권한’이다. 출전 명단을 짜고, 선수를 기용하고, 전술을 구성하는 것은 명백히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이는 전 세계 어느 팀에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규칙이다. 감독은 경기력, 선수단 운영, 시즌 계획 등 총체적 관점에서 결정을 내린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중용되고, 누군가는 경쟁에서 밀려난다.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레전드라도, 개인 커리어의 상징성이나 팬들의 감정이 전술적 판단보다 앞설 수는 없다.
더구나 기성용은 36세의 베테랑이다. 현장에서는 경기 체력, 전술적 기여도, 시즌 로테이션까지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팬들은 선수가 지닌 ‘상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감독에게 우선순위는 당장의 경기력과 성적이다. 김기동 감독은 포항전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팬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서울에 대한 진심과 믿음은 변함없다. 이 믿음이 선수단에 잘 전달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원론적인 답변이 아니다. 팀의 운영과 결정권은 감독에게 있으며, 그 권한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발언이다. 기성용 본인도 출전 시간을 위해 이적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서울의 ‘주장’ 제시 린가드는 팬들의 야유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솔직히 경기장 분위기가 선수로서 쉽지 않았다. 기성용은 명백한 레전드지만, 프로 선수로서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라며 기성용의 선택을 존중했다. 기성용은 포항전 종료 후 팬들에게 보낸 마지막 인사에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이가 들며 기량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서울이 나로 인해 더 이상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마주한 상황 속에서 최선을 선택하려고 노력했다. 감독님도 마찬가지다. 팬들이 다시 한번 뭉쳐서 서울이 예전의 영광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응원을 바랐다.
이제 기성용은 떠났다. 아쉬움은 남겠지만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팬들의 목소리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과 별개로, 응원은 압박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선수를 기용하고 팀을 운영하는 것은 감독의 권한이다. 팬심이 선을 넘는 순간, 그 피해는 선수단 전체로 돌아온다. 그것이 진정한 ‘응원’인지,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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