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아카이빙] 일상의 조각들로 엮은 풍경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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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일상의 조각들로 엮은 풍경②

문화매거진 2025-06-30 00:52: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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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일상의 조각들로 엮은 풍경①에 이어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등 '10폭 백납병풍' 견본채색 등 190.0×420.0cm / 도판: 겸재정선미술관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등 '10폭 백납병풍' 견본채색 등 190.0×420.0cm / 도판: 겸재정선미술관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병풍이 전체의 구조보다는 개별 장면의 생동감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납도 병풍은 일종의 ‘패치워크(여러 가지 색상, 무늬, 소재, 크기, 모양의 작은 천조각이나 큰 천조각들을 서로 이어붙여 하나의 천으로 만드는 수예)’처럼 구성되어 있다. 조형의 통일성보다는 감각의 축적, 구조적 질서보다는 기호들의 병렬이 중심이 된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오늘날 설치 미술이나 비선형적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작가들에게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진다. 감상자는 각 장면을 해석하기보다는 감응의 단편들로 읽어나가며, 병풍 앞을 움직이는 자신의 시선을 통해 작품의 흐름을 완성해간다.

▲ 전시 작품 / 사진: 정서원 제공
▲ 전시 작품 / 사진: 정서원 제공


‘조선민화전’ 전시가 보여주는 병풍들은 과거와 현재의 감상 방식을 동시에 질문하는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백납도 병풍은 그중에서도 회화가 단지 이야기의 매체가 아니라 정서와 소망, 의미가 접히고 펼쳐지는 구조물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되새긴다. 하나의 장면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복합적인 삶의 감각. 그것이 병풍의 공간 안에서 차분히 펼쳐진다.

백납도 병풍 앞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감상자의 위치가 고정된 ‘정면의 응시자’가 아닌, 움직이는 관찰자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병풍 앞을 서성이며 시선을 옮기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곁눈질하듯 들여다보게 된다. 이때 감상자는 단일한 중심을 향해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단면들 사이에서 감각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행위자가 된다. 이는 병풍이라는 장치가 단지 회화의 바탕이 아니라 감상을 유도하는 일종의 공간 장치이자, 시선의 틀(frame)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더 나아가 이 병풍은 관람의 방식과 더불어 이미지에 대한 사유의 방식 자체를 다시 묻는다. 병풍의 장면들은 자율적이고 단편적이지만 각 이미지가 갖는 문화적 코드나 기호는 다층적이다. 

▲ 전시 작품 / 사진: 정서원 제공
▲ 전시 작품 / 사진: 정서원 제공


백납도 병풍은 표면적으로는 익숙한 상징들-꽃, 물고기, 과일, 사군자-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배열 방식은 단순한 반복이나 나열이 아니라, 의미 간의 거리와 간격을 조절하는 리듬 구조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병풍은 단지 민화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의 조형적 언어 체계로 읽히기 시작한다. 회화라기보다는 감각의 사전을 펼쳐놓은 듯한 구성이 바로 그 매력을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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