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학 지식에 잠수능력도 겸비…살인·화재·침몰 현장 종횡무진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프랑스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가 남긴 이 명언은 현대 과학수사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지지만, 바다에서는 사정이 다소 다르다.
물속에는 곤충이 없기 때문에 익사자가 발견되더라도 곤충을 이용한 사망 시간 추정이 불가능하고, 파도와 조류 때문에 사건 현장 보존도 육상보다 매우 어렵다.
그러나 단 하나의 흔적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감식 활동을 벌이며 사건·사고의 실체를 규명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해양경찰 수중감식 조사관들이 그 주인공이다.
전국 5개 지방해양경찰청 10명으로 구성된 해경 수중감식관은 바다에서 다양한 형태의 현장감식 업무를 담당한다.
해상 시신 유기 사건 땐 범행도구를 찾기 위해 해저 바닥을 'ㄱ'자, 격자형으로 이리저리 다니며 정밀 수색을 벌이고, 차량이 바다에 빠졌을 땐 블랙박스 등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해 차량 내부를 샅샅이 검색한다.
선박 화재 침몰 사고 땐 발화점을 찾기 위해 몇차례나 잠수를 거듭하고, 선박 충돌 사고 땐 사고 원인 규명에 도움이 될 만한 페인트 흔적을 채증하기 위해 조각칼과 끌을 지니고 입수를 반복한다.
중부해경청 과학수사계 박창준 경사는 28일 "2021년 태안 신진항 화재 때 어선 23척이 침몰했는데 바닷속에서 마주한 현장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며 "수중 감식을 몇차례 했더니 얼굴 피부가 다 일어날 정도로 힘들었지만, 화재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돼 보람도 느꼈다"고 말했다.
작년 1월 부산에서는 남해해경청 소속 수중감식관들이 부산신항에 정박 중인 7만t급 화물선에서 코카인으로 추정되는 마약 100kg를 발견해 압수하기도 했다.
당시 수중감식관은 선내에 필요한 해수를 빨아들이는 입구(씨체스트)에서 마약이 든 가방 3개를 발견해 마약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수중감식관들은 법과학적 상식 외에 잠수 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평소 고도의 수중 훈련을 반복한다.
이런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수중감식관 대부분은 공공안전잠수(PSD) 3급 이상 자격을 갖추고 있다.
지난 23∼25일에는 부산에서 해군,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재난 희생자 신원확인(K-DVI) 수중과학수사' 교육·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중부해경청 과학수사계 유종원 경장은 "수중감식 건수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인데 범죄나 사고 경위를 입증해 줄 증거물을 제대로 확보하려면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며 "퇴근 후에도 동료 선배와 함께 사비를 들여 송도 다이빙풀에서 연습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해경청은 수중감식관의 전문성과 역량을 더욱 키우기 위해 실제 상황을 가정한 맞춤형 훈련을 다양화하고 해군, 경찰청 등 유관기관과의 공조 체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김상현 해경청 과학수사계장은 "수중감식관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인력 보강 전까지는 현재 감식관들의 역량 강화에 주력할 것"이라며 "정례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각종 해양 사건·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해경 과학수사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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