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야생에서 자취를 감췄던 한국 토종 여우가 무려 10년의 노력 끝에 다시 한반도에 등장했다.
1970년대까지 한국 전역에서 볼 수 있었던 토종 여우가 한때 멸종 위기까지 갔다. 환경 변화와 인간의 개입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당시 전국 곳곳에 쥐약이 살포되면서 간접 피해를 입은 여우가 줄었고 밀렵과 서식지 파괴도 이어졌다. 결국 1980년대 들어 야생에서 자취를 감춘 한국 토종 여우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로 등록됐다.
사람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중간 포식자, 한국 토종 여우
유럽, 시베리아, 중동, 북아프리카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붉은 여우의 아종으로 한반도 여우는 습한 기후와 추운 겨울에 맞춰진 짧은 털과 작은 체구를 가졌다. 몸길이는 약 60~80cm, 꼬리는 40cm가량이고 무게는 5kg 안팎이다. 꼬리는 체온 조절과 균형 감각 유지에도 쓰이며 의사소통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여우는 주로 야행성이고 뛰어난 청각과 후각으로 먹이를 탐지한다. 곤충, 들쥐, 새, 토끼를 사냥하며, 과일이나 식물의 열매도 먹는 잡식성이다. 새끼는 보통 봄에 4~6마리 정도 낳으며 어미가 굴에서 보호하다가 몇 달 후 독립시킨다.
여우는 꾀가 많고 교활한 동물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는 적응력이 뛰어나다. 사막부터 숲까지 환경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지만 이런 생존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여우가 사라지면서 생태계 균형에 문제가 생겼다. 중간 포식자가 사라지자 국내에는 멧돼지, 고라니 등 초식동물의 수가 급증했다. 특히 멧돼지는 농경지까지 내려와 피해를 줬고 고라니는 도로 위 무법자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크고 작은 피해를 안기고 있다. 여우는 이런 동물들의 새끼를 사냥하면서 개체 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던 포식자였다.
대형 맹수인 호랑이나 늑대, 표범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상황에서 여우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생태계에 꼭 필요한 중간 포식자로 평가된다. 때문에 2010년 국립공원공단과 환경부는 여우 복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여우 복원,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
야생에서 사라진 토종 여우를 다시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해외에서 여우를 들여오는 방식은 토종 유전자를 잃게 되는 위험이 있어 배제됐다. 대신 국내 보유 유전자를 가진 개체를 바탕으로 증식 기술을 개발하고 증식 개체를 직접 방사하는 방법으로 복원 사업이 이어졌다.
2010년부터 10년간 이어진 연구 끝에 국내에서 여우를 안정적으로 번식시키는 기술이 완성됐다. 특히 이 시기에는 번식뿐 아니라 야생 적응을 위한 훈련과 개체별 행동 분석도 함께 진행됐다.
이후 2019년부터 본격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매년 30마리가 넘는 새끼 여우가 태어났다. 생존율은 무려 95%에 달했다. 생존한 개체는 일정한 야생 적응 과정을 거쳐 방사됐고 일부는 이미 산속에 자리 잡았다. 현재는 국립공원 내 일부 지역에서 여우가 다시 야생 개체군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멸종됐다고 판단됐던 한국 토종 여우를 다시 복원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유럽 일부 지역에서 늑대나 스라소니를 복원한 사례는 있지만 중간 포식자 복원과 야생 적응 훈련까지 포함한 체계적 관리 사례는 많지 않다.
중간 포식자인 여우가 다시 등장하면서 생태계 전반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고라니나 멧돼지처럼 개체 수가 급증했던 종의 수가 서서히 조절되고 있다. 여우는 사람과의 거리도 적당히 유지하면서 마을 주변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우 외에도 반달가슴곰, 삵, 담비 등 중소형 포식자의 복원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생태계에서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특정 종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여우는 생태계 전반의 흐름을 조절하는 중간 고리로서 복원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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