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이재명 정부의 첫 고용노동부 장관에 김영훈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명됐다. 김 후보자는 노동계 출신 장관으로서 관료 조직을 이끌며 이 정부의 노동 존중 기조와 정책을 구현해야 하는 책무를 맡게 됐다.
다만 경영계 일각은 이 후보자가 최근 업계 내 민감한 법안인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과 주 4.5일제 등 추진의사를 드러내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27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김 후보자를 비롯해 모두 11명의 장관과 1명의 장관급 인사를 발표했다.
강 비서실장은 김 후보자에 대해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하며 노동의 목소리 대변해 온 인물”이라며 “산업재해 축소, 노란봉투법 개정, 주 4.5일제 등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역할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소개했다.
이번 고용노동부 장관 지명은 고용노동부 장관직을 오랫동안 관료, 학자, 정치인 출신이 주로 맡아온 이전과 달리 다른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된다. 현직 노동자 출신이자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인물이 장관 후보로 지명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후보자는 대학 졸업 후 1992년 철도청에 입사한 뒤 34년 동안 철도 기관사로 근무하며 현장 노동자로 지냈다. 2000년 전국철도노동조합(이하 철도노조) 부산지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이후 2004년 철도노조 위원장을 거쳐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했다.
정치권과의 인연은 2017년 정의당(현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2020년 정의당, 지난해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21대 대선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선거를 지원했다.
김 후보자는 장관 후보자 명단이 공개되는 순간에도 열차를 운행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명 발표 이후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자신의 SNS를 통해 “노동이 존중받는 진짜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내놨다.
노동계는 이 같은 김 후보자 임명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직 노동자이면서 노동계에 오래 몸 담고 있던 만큼 노동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은 지명 발표 당일인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김 후보자는 민주노총 위원장과 철도노조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 노동현장의 현실과 과제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고 평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지난 3년여간 노동 탄압과 반노동 정책으로 일관해왔고 노조 무력화 정책을 강행했다”며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 정책을 폐기하고 노동권 보장을 위한 국정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정부의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논평을 내고 “김영훈 전 위원장은 철도 기관사로 오랫동안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왔고 2020년까지 정의당에서 노동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노동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인물로 평가된다”며 “신임 고용노동부장관은 진영 논리나 경제 논리, 관료적 타성에 기대지 말고 노사정간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통해 실질적인 진전을 이끌어 내기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 일각에서는 노조위원장 출신의 고용노동부 장관 지명을 두고 노사 균형을 해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김 후보자가 최근 경영계 내 민감한 법안에 대해 추진 의사를 드러내면서 노조 위주로 정책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후보자 지명을 두고 기업 위축 등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명지대 경제학과 조동근 명예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노조위원장 출신이 장관이 될 경우, 노동계에 편향된 인사로 비칠 우려가 있다”며 “정부에게는 노사 간 균형을 유지하며 중심을 잡는 태도와 정책이 요구되는데, 특정 진영에 치우친 인사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는 기업의 위축으로 이어져 산업 전반과 경제 활동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결국 취업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행정부라면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근로자 보호는 제도적·법적 장치를 통해 이뤄져야지 인사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주 4.5일제와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현실, 노동자 임금 감소 우려, 무분별한 파업 가능성, 고용 둔화 등의 부작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며 “단순한 제도 도입보다는 현장에 기반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노란봉투법에 이어 정년연장, 주 4.5일제 등 주요 노동 정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후보자는 지난 25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출근하며 기자들에게 이 대통령이 대선 공약 등으로 약속한 주4.5일 근무제와 정년 연장, 노란봉투법 재추진 문제와 관련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며 강력히 추진하겠다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다만 김 후보자는 “어떤 제도와 정책도 당위나 명분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며 “중요한 문제들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이익을 찾아가는 길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노란봉투법과 달리 주 4.5일제 도입은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핵심과제에서 일단 제외된 상태다. 주 4.5일제를 시행하려면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할뿐더러 경영계가 경기침체 국면에서의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당장 논의에 속도가 붙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도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정년 연장 방식을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 차가 커 논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경영계는 현재 법정 정년인 60세를 유지하면서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퇴직 후 재고용’ 방식으로 유연하게 대응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법정 정년 자체를 65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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