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직장에서 오래 일한 뒤 퇴직할 때 받는 퇴직금은, 많은 근로자에게 마지막 보너스이자 새로운 출발의 자금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일원화하고, 모든 사업장에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오랜 관행이 바뀌려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퇴직연금 제도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퇴직금을 없애고, 퇴직연금만 남긴다. 게다가 그 퇴직연금은 모든 사업장에서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이 변화는 단순히 제도 이름이 바뀌는 수준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퇴직과 동시에 목돈을 일시금으로 받아 학자금, 전세 자금, 창업 자금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연금처럼 일정 기간에 걸쳐 나눠 받게 되는 구조가 된다. 일시금 수령이라는 선택지를 잃는다는 건, 긴급한 자금이 필요한 근로자에게는 실질적인 제약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제도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금, 일시금 대신 연금 형태로 자산을 분산 수령하면 노후 소득을 일정 부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많은 근로자들이 퇴직금을 받자마자 대부분을 소비하거나 빚을 갚는 데 써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노후가 불안해지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방향은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근로자의 선택권이다. 연금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더라도, 단기적으로 자금이 필요한 사람도 존재한다. 지금의 제도는 연금과 일시금 중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었지만, 단일화가 이뤄지면 이 선택권이 사라지게 된다. 노후 안정이라는 명분이 개인의 경제적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번 개편안에는 퇴직급여 수급 자격을 기존 1년 이상에서 3개월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도 퇴직연금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이는 긍정적인 변화다. 짧게 일하는 단기 근로자나 고용 형태가 유연한 노동자에게도 퇴직 보장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근로자 입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정부가 퇴직연금 자산을 공단을 통해 통합 운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민연금처럼 공공이 자산을 굴려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설명이지만, 이 또한 위험 요소가 있다. 투자 수익이 저조하거나, 운용이 투명하지 않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근로자에게 돌아온다. 현재 퇴직연금을 운용하고 있는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퇴직연금 의무화는 결코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다. 이는 근로자의 노후, 자산, 삶의 방식 전반을 바꾸는 일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제도 도입의 속도를 조절하고, 근로자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과 선택권 보장, 그리고 철저한 운용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퇴직금은 사라질 수 있어도, 근로자의 권리는 사라져선 안 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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