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병풍과 제단화는 모두 ‘분할된 화면’이라는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그 분할이 작동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병풍은 접히는 화면을 통해 감정의 흐름을 풀어놓고, 제단화는 열리고 닫히는 장치로 감정의 기승전결을 통제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두 형식은 공간 구성, 시선 배치, 감정 설계의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그 차이는 곧 감상자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상상하는지에 대한 문화적 차이이기도 하다.
병풍은 기본적으로 ‘걸어가며 감상하는 회화’다. 감상자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각 폭을 따라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장면을 연결한다. 폭과 폭 사이의 간격은 하나의 흐름이라기보다는 감정과 감정 사이의 여백으로 기능한다. 병풍은 이야기보다는 정서의 전개를 전제로 하며, 각각의 장면은 독립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공유한다. 이때 감상자는 특정한 시점이 아니라, ‘움직이는 시선’으로 위치한다. 병풍의 장면들은 사건의 연속이라기보다는, 시공간을 나열한 감각의 지도로 작동한다.
반면 제단화는 감상자의 위치를 철저히 고정한다.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며, 작품은 날개의 개폐에 따라 내러티브를 시간순으로 배열한다. 날개를 닫으면 상징적 전사가 펼쳐지고, 날개를 열면 극적인 절정이 등장한다. 이 과정은 감상자가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의도적으로 참여하도록 설계된 감상 구조’다. 중심 패널은 언제나 강조되고, 좌우 패널은 그를 보완하며 신학적 맥락을 형성한다. 감상은 연속적이고, 감정은 목표를 향해 진행된다.
병풍이 감상자의 자유를 허용하는 구성이라면, 제단화는 감상자를 하나의 사건 안에 위치시키는 장치다. 병풍은 내러티브보다 정서, 전개보다 여백, 중심보다 병치를 선택한다. 반면 제단화는 중심의 확립, 서사의 압축, 감정의 고조를 전제로 한다. 병풍이 개인적인 명상과 사유의 구조라면 제단화는 집단적인 의례와 믿음의 극장이다.
이 두 형식은 감상자를 둘러싼 문화의 감각적 질서를 반영한다. 회화는 단지 그려진 장면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감상하게 할 것인가를 포함한 시각적 질서의 총합이라는 점에서 병풍과 제단화는 오늘날 다시 고유한 감각 구조로 읽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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